벚꽃이 한창인 봄날의 기억이 있다.
거리를 물들이는 분홍빛 물결을 보고 싶어 엄마와 함께 팔공산으로 향했다. 화사한 꽃잎이 나풀거리며 우리를 반기는 순간, 마치 오래된 그리움이 꽃망울처럼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 잊고 싶어, 나는 그 벚꽃 길을 따라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벚꽃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풍경에 넋을 잃은 사이, 나는 그만 산속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이 길이 아닌 듯한 불안이 엄습했고, 더 이상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 그때 지나가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붙잡아 길을 물었다. 뜻밖에도 그중 한 분이 같은 동네에 사신다고 했다. 낯선 산길에서 만난 이 기묘한 인연이 왠지 반가웠다.
그분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셨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차를 돌렸지만, 초보 운전자의 서툰 마음은 여전히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손짓을 했다. 놀라 뒤돌아보니, 바로 그 아저씨였다. ‘따라오라’는 의미였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실, 그는 모르는 사람을 굳이 챙겨줄 이유가 없었다. 그냥 길만 알려주고 떠나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자신의 차를 천천히 몰며,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몇 번이고 거울로 확인해 주셨다. 계속 뒤돌아보시면서 느릿하게 달리던 그 속도에는 배려와 따스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초보라 금방이라도 차를 놓칠까 두려웠는데, 그분은 끝내 나를 놓치지 않으셨다. 마치 산길의 등대처럼, 그분의 차 불빛이 내 두려움을 지워 주었다.
세상은 때때로 차갑고 외롭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음을 저버리는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은 점점 움츠러든다. 나 또한 그런 경험 속에서 ‘세상은 무섭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 낯선 산길에서 만난 한 사람의 선의가 그 모든 두려움을 잠시 잊게 했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기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세상은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동시에 선의를 건네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곱씹어보았다. 외롭고 힘든 세상이라도, 이런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닐까. 우연히 마주친 선의가 한 줄기 빛처럼 삶의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순간. 그것이 바로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당신은 잠시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셨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제게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을 등불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무섭기만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믿을 수 있는 온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당신을 통해 배웠습니다.
부디 당신의 삶에도 벚꽃처럼 환한 순간들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