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면 나는 반죽을 시작한다.
밀가루 봉투를 열면, 고소하고 묘하게 포근한 냄새가 먼저 코끝을 간지럽힌다. 하얗고 고운 가루를 볼에 부으면, 마치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듯 고요하다. 거기에 물을 천천히 부어 넣는다.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밀가루에 물이 적으면 부서져 버리고, 물이 너무 많으면 흐물흐물 죽이 되어버린다. 인생이 그렇듯, 반죽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손끝이 그 미묘한 경계를 찾아가는 순간이 좋다.
손으로 반죽을 만지기 시작하면 세상과의 거리가 조금 멀어진다.
가루와 물이 섞이며 질감이 달라지는 그 짧은 순간, 손끝은 기억한다. 처음엔 뻣뻣하고 투박하던 밀가루가 손바닥의 온기를 머금으며 점점 말랑해진다. 손가락 사이로 반죽이 스며들고, 피부에 닿는 감촉이 묘하게 생명감이 있다. 밀가루가 숨 쉬는 것만 같다. 손목에 힘을 주고 꾹꾹 눌러주면, 반죽은 나에게 순응하듯 부드러워진다. 마치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하고 말하는 듯하다.
그 과정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하나의 명상이다.
무언가를 잊고 싶을 때, 아니면 너무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나는 이 반죽을 찾는다. 손이 바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반죽을 치대고, 말아올리고, 또 눌러 펴는 반복 속에서 잡생각들이 서서히 밀려나간다. 온 신경이 손끝에 집중된다. 반죽의 말캉함, 밀가루 냄새, 손바닥의 미세한 따뜻함이 온몸을 감싼다. 어린 시절 찰흙놀이를 하던 그 시간처럼 — 아무 이유 없이 행복했던, 단지 손으로 만지고 형태를 만들던 그때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반죽이 어느 정도 숙성되면, 나는 살짝 덮어둔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일조차 위로가 된다. 충분히 쉬어야 반죽이 더 부드러워지듯, 사람도 잠시 멈추어야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쉬어간 반죽을 조금씩 뜯어 넣으면, 냄비 안의 육수는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반죽 조각들이 물 위로 떠오를 때, 꼭 내 안의 조각난 마음들이 하나씩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것 같다.
국물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멸치와 다시마 향이 집 안을 감싼다.
이 순간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평화다. 숟가락으로 건져 올린 수제비 한 조각이 혀끝에 닿을 때, 그 따뜻함이 온몸으로 번진다. 쫄깃하고 부드럽고, 묘하게 정이 느껴진다. 그건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나를 다독이는 손길 같다.
누군가의 위로보다, 이 한 그릇의 수제비가 더 큰 힘이 되는 날이 있다.
반죽을 치대던 손끝의 기억이 남아서일까. 나는 오늘도 그 온기를 떠올리며, 조용히 숟가락을 든다. 바쁜 세상 속에서도 나를 다시 연결시켜주는 작은 의식처럼.
수제비 한 그릇 속에는 손의 온기, 마음의 결, 그리고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함께 끓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밀가루와 물을 섞는다. 그 말캉한 행복을 다시 만나기 위해.
오늘 , 완성된 수제비 한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그 사이로 멸치와 파의 향이 은근히 스며들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입 떠넣는 순간, 뜨거운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 한가운데 머문다.
말로 다 하지 못했던 슬픔도, 혼자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도 그 따뜻한 국물 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린다.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위로였다.
누군가의 말보다 더 깊게 스며드는 온도, 내 마음을 천천히 덮어주는 부드러운 온기.
한그릇씩 수제비는 그렇게 나를 살렸다.
그리고 나는 안다.
지친 하루 끝에도, 내 손끝으로 만든 따뜻한 한 그릇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