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말없이 속삭였다

조용한 외침

by 윤슬

집 안에 아주 오래된 화분 하나가 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있던 화분이다. 오래 투병하시던 할머니가 떠나시고, 몇 해 전에는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다. 가족의 부재 속에서도 그 화분은 자리를 지키며 살아남았다. 수명이 다한 듯 보였던 화분은 여전히 푸른 숨을 내쉬고 있다.


어머니는 그 화분을 버리자고 하셨다. 오래된 화분 속 식물은 말라비틀어져서 거의 죽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버리기에는 무언가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습관처럼 물을 주고 지켜보았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초라한 줄기에서 연둣빛 잎이 돋아나더니, 계절이 바뀔 즈음 환하고 붉은 꽃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순간 오래된 화분이 속삭이는 듯한 착각을 했다. “이래도 나를 버릴 거냐고.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여리여리한 식물이 이렇게도 독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햇살이 따스해지면 꽃봉오리는 더 풍성해지고, 한 해에 한 번은 꼭 탐스러운 꽃을 피워낸다. 그 생명의 집요한 의지가 나를 감동시킨다.


꽃더미가 피어날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선다. 눈을 뗄 수 없는 붉은 빛, 그 뜨거운 외침은 언제나 나를 울린다. 마치 청춘의 한 장면처럼, 사라진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순간을 보여준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서, 이 화분은 꿋꿋하게 살아남아 그리움을 대신해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우리가 쉽게 버리려 했던 것들,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놓아버린 것들 속에도 여전히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오래된 화분 하나는 나에게 삶의 끈기와 희망을 가르쳐주고 있다.


꽃들은 해마다 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나에게 속삭인다.

“너는 아직 청춘이다.”










#윤슬#청춘#힐링#감성#성찰

#꽃 #속삭임 #조용한외침 #감성에세이 #일상감성 #잔잔한하루 #마음챙김 #작은행복 #자연과함께 #힐링글





keyword
이전 01화바람 속에 울던 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