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다.
밤을 끌어내리고,
아침을 밀어 올리는 일.
물은 매일 같은 방식으로 해낸다.
나는 그 힘의 모양을 따라 배운다.
끝까지, 조용하게.
새벽에 유리컵을 채운다.
가장자리에서 얇은 빛이 생긴다.
손에 닿는 차가움이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한다.
표면의 결이 잠깐 흔들리고,
곧 잦아든다.
물은 나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조금씩 제자리로 돌려놓을 뿐.
밀물처럼.
오늘은 비가 온다.
가을비.
여름의 폭우와 다르다.
성급하지 않고, 오래 버틴다.
창틀에 닿는 소리는 낮고 부드럽다.
창을 조금만 연다.
첫 공기가 들어온다.
젖은 흙냄새가 따라온다.
오래 묵은 책의 가장자리처럼,
낡았으나 명확한 냄새.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면
숨어 있던 냄새가 피어오른다.
도시의 먼지와 여름의 열기가
잠깐 고개를 들지만,
끝에서는 흙이 이긴다.
생명의 냄새다.
골목의 나무들이 먼저 보인다.
며칠 전까지 말라 있던 잎사귀.
오늘은 다르다.
잎맥을 떠라 흐르는 빗방울.
굳었던 초록이 풀린다.
천천히 내려앉는 가지.
무게가 생겼다.
물의 도착이다.
생명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생명은 묵묵히 팽창한다.
물은 그 팽창을 돕는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낡은 콘크리트의 홈마다
맑은 고임이 생긴다.
고양이는 지붕 밑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누그러지면 내려와서 마실 것이다.
혀끝이 닿는 순간,
미세한 파문이 퍼진다.
그 파문에 회복이 얹힌다.
가을비는 이야기를 길게 한다.
시작은 조용하지만, 끝은 단단하다.
창문을 스치는 작은 소리들이
하나의 리듬이 된다.
그 리듬에 맞춰
나는 방 안의 그릇을 씻고,
젖은 우산을 세워두고,
창턱의 물기를 닦는다.
사소한 동작들 사이로
마음이 가라앉는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대신 자기 자리를 확장한다.
틈을 찾고,
시간을 택한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고집보다 옳은 방향으로.
오늘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비가 그렇게 말한다.
흙냄새는 기억을 흔든다.
가을장마의 아스팔트,
운동장의 흙,
기다리던 오후.
흙이 젖으면
말라 있던 감정도 수분을 얻는다.
마음의 표면이 부드러워진다.
단단한 말들을 잠시 접어 둔다.
물은 치유를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조건을 만들어 줄 뿐.
치유는 그 조건 위에서
천천히 자란다.
나무가 오늘
보여 준 방식대로.
비는 도시의 색을 바꾼다.
표지판은 선명해지고, 벽돌은 어두워진다.
네온은 번지고,
횡단보도의 흰색은 더 하얗게 떠오른다.
물은 빛을 데리고 다닌다.
빛은 물을 만나 모양을 얻는다.
빗방울마다 작은 렌즈가 생긴다.
세계는 한 번 더 보인다.
왜곡되었지만, 진실하다.
전체가 아니라, 순간의 진실.
붙들지 않아도 괜찮다.
물은 지나가면서 남긴다.
얼룩이 아니라,
방향을.
창가에 유리컵을 올려둔다.
빗소리에 맞춰
표면이 아주 약하게 흔들린다.
손가락으로 컵을 감싼다.
온기가 천천히 전달된다.
물은 온도를 나눈다.
나눔은 소모가 아니다.
나눔은 전달이다.
내 온기가 물을 데우고,
그 물이 다시 나를 데운다.
그 순환을 배우면,
말의 방식도 달라진다.
크게 설득하지 않고,
조용히 데워 주는 말.
골목의 나무들 아래로
물이 모인다.
하수구로 향하는
얕은 개울이 생긴다.
잎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작은 타악기를 친다.
규칙은 없지만, 흐름이 있다.
나는 그 흐름을 따라 걷는다.
발밑에서 물이 갈라지고
다시 모인다.
내 하루도 그렇다.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흩어짐은 실패가 아니다.
모임은 우연이 아니다.
물은 그 사이를 이어 준다.
오늘의 나는
한 컵의 깊이로,
한 골목의 길이로 버틴다.
충분하다.
가을비는 그렇게 말한다.
길냥이 사료를 다시 챙긴다.
비를 머금고 살아난 잎을 한 번 더 본다.
생명은 요란하지 않다.
대신 성실할 뿐.
물이 있을 때 자라고,
없을 때 기다린다.
기다림도 생명의 일이다.
나는 그 일을 배우는 중이다.
조용한 힘의 모양대로.
밀물처럼 조금씩,
썰물처럼 불필요를 비워 내며.
오늘의 끝에서 안다.
큰소리보다 오래가는 것.
물은 답을 안다.
나는 그 답을 따라 묵묵히 걷는다.
젖은 길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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