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날 살린 이야기

by 윤슬

나는 문장의 힘을 믿는다. 말로는 버티지 못한 밤들을, 몇 줄의 문장이 건너게 했다. 문장은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방향을 보여준다. 방향은 소리보다 오래 간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낮은 지붕 아래로 올라가는 계단은 삐걱거렸고, 문을 열면 먼지 냄새와 종이 냄새가 겹쳤다. 나무 창 두 개가 있었다. 오후의 빛이 그 창을 통해 조용히 쏟아지면, 빛은 창틀을 넘어와 책 위에 앉았다. 나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도 멀리 갔다. 사막으로, 고대로, 숲속으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공기가 바뀌었다. 시간은 문밖에 세워 두었다.


행복해서 밥 먹는 것도 잊었다. 그때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닿았다. “지혜야 뭐하노, 밥 먹어라. 야가 뭐하노.” 나는 그제야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장사를 하셔서 늘 바빴다. 바쁨 사이로 밥상은 단출했다. 김치, 어묵 한 접시, 콩자반. 충분했다. 빛은 창에서 오고, 길은 문장에서 열렸지만, 돌아오라는 방향은 엄마의 부름이 만들었다. 나는 그 두 방향 사이에서 자랐다. 멀리 가는 법과, 제자리로 돌아오는 법.


그날, 나는 배웠다. 목이 마른 날에도 문장 몇 줄이 물이 된다는 것을. 다락방은 오아시스였고, 책은 샘물이었고, 문장은 길이었다. 황홀은 오래갔고, 지금까지도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오후의 따뜻한 빛을 기다린다. 한 줄이 도착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세월이 흘러도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문장은 밀물처럼 모인다. 필요가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여백은 부름이다. 고요가 길을 내면 단어가 그 길을 따라 들어온다. 문장은 썰물처럼 물러난다. 불필요를 걷고 핵심을 남긴다. 남은 핵심이 방향이 된다. 방향은 발걸음을 고르게 한다. 고른 발걸음이 하루를 건너게 한다.


가장 낮은 날이 있다. 방은 어두웠고, 차는 식었고, 마음은 산란하다. 그날 나는 한줄도 쓰지못했다. 위로는 정답이 아니다. 위로는 온도다. 정확한 한 줄의 온도. 그 온도가 어두운 방을 천천히 데웠다.


읽기와 쓰기는 서로를 데운다. 누군가의 문장이 먼저 나를 살린 날이 많았다. 김청준, 박완서, 고정희, 토마스 만은 누구보다 날 위로하는 방법을 알았다. 데워진 기억은 다시 나를 일으킨다.


언젠가부터 내 문장도 누군가에게 닿기 시작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은 글일수록, 더 멀리 갔다. 울림은 크지 않았지만, 길었다. 멀리 간 것은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그날 나는 조금 더 믿게 되었다. 문장의 힘을. 조용한 힘의 모양을.


나는 종종 길을 잃어야 했다. 길을 잃을 때마다, 나를 찾았다. 잃음은 혼란이 아니라 간격이다. 간격이 생기자 소음이 물러났다.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가 들어왔다. 작은 소리를 따라 문장이 생겼다. 문장은 다리가 되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이제 알겠다. 글이 날 살린 이야기의 중심에는 거창한 사건이 없었다. 한 권의 책, 두 개의 창, 한 줄의 문장, 그리고 부르는 목소리. 그것이면 충분했다. 충분함은 판단이 아니라 태도다. 부족을 감내하고, 넘침을 경계하는 태도. 오늘도 그 태도로 쓴다. 내일의 나에게 건네기 위해,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나는 문장의 힘을 믿는다. 믿음은 약속을 부른다. 소리보다 오래 가는 방향으로, 한 줄씩. 다락방의 빛이 그러했듯, 누군가의 오후에도 한 줄의 빛으로 도착하기를 바란다.


오늘도 한 줄이면 충분하다. 언젠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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