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오는 빛, 먼저 오는 외로움

by 윤슬


오늘의 빛은 높은 데서 오지 않는다.

창틀 먼지 사이로, 얇게 흔들리며 들어온다.

소식이 없다던 바람도, 그 얇은 떨림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 접힌 물결처럼, 내 이름을 조용히 펴준다.

남는 건 한 줄의 윤슬, 지우지 못한 밝음이다.


밤이면 초침 소리가 커져서 무음 시계를 새로 샀다. 그 이후로 방은 더 고요해졌고, 고요가 너무 커질 때면 창밖을 본다. 12층의 하늘은 빛을 늦게 잃는다. 구름의 모서리가 오래 반짝인다. 그 빛은 대낮처럼 화려하지 않고, 편지 뒤에 스며든 잉크처럼 한 겹 늦게 도착한다. 나는 그 늦음이 좋다. 늦게 오는 빛은 서두르지 않아서, 지친 마음을 놀라게 하지 않으니까. 오늘도 창틀 위 먼지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것을 오늘의 소식이라고 적어 둔다. 소식이란, 큰 목소리가 아니라 작은 떨림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창밖을 오래 보면, 빛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들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 나는 짧은 금속성 떨림, 골목을 한 바퀴 돌아 들어오는 오토바이의 낮은 소음, 복도 끝에서 돌아오는 사람 발걸음의 간격 같은 것들. 방 안에서는 커튼이 아주 조금 뒤로 젖혀지고, 유리창에 붙은 물기가 느리게 길을 만든다. 그 작은 움직임들이 한데 모여, 오늘의 외로움이 얼마나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려 준다. 외로움은 늘 먼저 와서 자리를 본다. 자리를 넓게 차지하지도, 떠들썩하게 굴지도 않는다. 다만 이 방의 온도와 빛의 각도를 확인하듯, 나를 둘러싼 사물들의 숨을 천천히 고르게 한다. 나는 그때마다 마음을 조금 정리한다. 아무것도 크게 하지 않은 채, 탁자 위의 컵을 제자리로 옮기고, 창문 손잡이의 먼지를 한 번 훑고, 멈춰 있던 문장을 다시 한 칸 앞으로 밀어 본다. 외로움은 나쁜 손님만은 아니다. 먼저 와서 빈자리를 정돈해 놓고, 늦게 올 빛이 머물 자리를 비워 두기도 하니까.


늦게 오는 것들은 서로 닮았다. 빛도 그렇고, 용서도 그렇고, 소식도 그렇다. 서둘러 도착하지 않기 때문에, 도착했을 때의 온도가 지나치지 않는다. 너무 뜨겁지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게. 그래서 나는 등받이에 등을 깊이 기대고, 숨을 조금 더 길게 내쉰다. 오늘을 버틴 몸이 알아서 속도를 낮추도록, 마음속 스위치를 하나씩 끈다. 알림을 끄고, 화면을 어둡게 하고, 마지막으로 커튼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정리한다. 손끝에 닿는 천의 감촉이 묘하게 안심을 준다. 그런 사소한 동작들이 이 방의 리듬을 맞춘다.


빛은 여전히 늦다. 그러나 늦음 속에서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기다림의 기술, 작은 신호를 수신하는 법, 사소한 떨림을 놓치지 않는 눈. 나는 그것들을 오늘의 숙제로 적어 둔다. 너그러움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지금 있는 자리에서 시작해도 된다는 것, 닿지 않은 것들을 미워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생각들에 이르면, 외로움은 조금 뒤로 물러나고, 방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빛이 완전히 도착하기 전인데도, 어둠이 더 이상 날카롭지 않다. 어둠 속에도 질감이 있고, 질감 속에도 온기가 있다는 사실을, 매번 늦게 깨닫는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나는 마음의 창을 닫지 않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비슷하다. 뒤늦은 것들이 나를 살렸기 때문이라고. 늦게야 쓰인 문장, 늦게야 이해한 마음, 늦게야 돌아온 사람의 안부. 다 늦게 왔지만, 다 내 자리를 지나치지 않고 한 번씩 머물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을 크게 켜지 않는다. 스며드는 것들이 먼저 말을 걸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 둔다. 여백은 빈칸이 아니라, 도착을 위한 완충지대다. 나는 그곳에서 조금 더 오래 앉아 있겠다.


내일의 빛이 어떻게 와도, 나는 창을 닫지 않겠다.

조용히 들어와 머무를 자리를 남겨 두겠다.

외로움이 너무 먼저 자리를 넓히지 않도록, 작은 떨림을 켜 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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