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우물과 푸른빛의 서사

한없이 투명한 화이트 확대 개정판

by 윤슬

아버지는 내 태몽을 “가장 맑고 깊은 우물”이었다고 하셨다. 그 말은 오래도록 를 따라다녔다. 스스로를 떠올릴 때 나는 늘 우물의 이미지부터 보았다.


대학원에서 교수님은 내게 “맑다 못해 푸른빛이 나는 사람”이라 하셨다. 그리고 눈을 보며 덧붙였다.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못 산다.” 그 말은 칭찬이자 경고처럼 들렸다. 맑음은 미덕인데, 지나치면 생명이 머물지 못한다니. 그날 이후 나는 내 내면의 색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화이트 아래에 배어 나오는, 그 푸른빛을.


바탕이 맑다고 해서 늘 평온한 건 아니었다. 세상은 그 맑음 위에 ‘착해야 한다’는 뚜껑을 얹었다. 나는 삼 남매 중 둘째였다. 사이를 잇는 다리, 균형을 맞추는 사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괜찮아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의 우물은 더 깊어졌고 물결은 멈췄다.


뚜껑을 덮을수록 물은 고였고, 고인 물은 생기를 잃었다. 이제야 알겠다. 맑음엔 흐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얼굴 위에 얇은 화이트를 잘 발랐다. 공손한 말투, 순진한 미소, 무난한 인사. 그 아래에는 늘 블루가 있었다. 슬픔의 블루, 사유의 블루, 고독의 블루. 그 블루를 감추려 더 하얗게, 더 고르게, 더 빈틈없이 덧칠할수록 작은 습기에도 바탕은 얼룩처럼 드러났다. 얼룩을 감추려 다시 덧칠하면, 블루는 더 짙어졌다. 연한 블루가 다크 블루가 되는 데엔 많은 사건이 필요치 않았다. 단지 오래 미뤄진 호명, 더딘 인정, 반복되는 억압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흐름’이라는 상징을 새로 세웠다. 약간의 부유물, 한 줌의 흙, 조금의 혼탁을 허용하는 일. 관계에서도 감정에서도 미세한 어긋남을 통과시키는 일. 나는 내 우물에 길을 내기 시작했다. 뚜껑을 닫아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물길을 열어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생각해 볼게요.” “이번에는 어려울 지도 몰라요.” “죄송한데 힘들 거 같아요.” 이 세 문장을 물길 삼아, 내 맑음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게 했다. 맑음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 도착지가 아니라 흐름이라는 걸 드디어 배웠다.


화이트와 블루는 이제 내게 대립항이 아니다. 겹의 언어다. 화이트는 세상과 조율하는 표면의 말이고, 블루는 내가 나에게 대답하는 바탕의 말이다. 하루를 살려면 표면의 말이 필요하고,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면 바탕의 말이 필요하다. 어느 날은 화이트가 많아도 좋고, 또 다른 날은 블루를 더 두텁게 허락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한쪽이 다른 쪽을 몰아내지 않는 일이다. 겹이 공존하는 투명, 그 사이를 빛이 드나드는 통로. 교수님의 말로 시작된 의문은 이렇게 변주된다.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못 산다”는 뜻은, 혼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신호였다는 것을. 생명은 언제나 약간의 흔들림 속에서 숨을 쉰다.


가끔은 밤에 창을 열고 어둠을 들여다본다. 빛이 사라진 뒤에도 하늘에는 푸른 잔광이 남아 있다. 그것은 슬픔의 잔광이자, 사유의 잔광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 푸름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빛 덕분에 길을 찾는다. 그 색이 있기에 니는 타인의 얼굴에 스친 미세한 균열을 알아보고, 성급히 단정하지 않게 된다. 누군가의 다크 블루는 그들이 버틴 밤의 총합일지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팔레트를 쥐고 살아간다. 핑크의 온기, 그린의 평정, 옐로의 희망, 그리고 나의 블루. 색은 취향이 아니라 역사, 한 사람의 시간이 남긴 침전물이다.


하루의 끝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오늘의 화이트는 무엇이었나. 무엇을 지키려 덧칠했나. 오늘의 블루는 어디서 스며 나왔나. 대답은 매끄럽지 않지만, 매끄럽지 않아서 진실에 가깝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덜 겹치고, 조금 더 흐르게 둘 것이다. 우물은 깊고, 물은 맑되, 바람이 드나드는 길을 열어둘 것이다. 그러면 푸른빛은 더 이상 두려움의 색이 아니라 생명의 색이 된다. 덧칠을 멈추는 순간, 색은 숨지 않는다. 숨지 않는 색은 이상하게도 더 단단하다. 나는 그 단단함으로 내일의 얼굴을 건넨다. 내 연한 블루를 변명 없이 내어놓고, 타인의 블루 앞에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로.


화이트 아래의 블루, 그리고 흐름.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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