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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un 24. 2022

#4. 아플 땐 잠시 웅크려도 괜찮아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는 퇴사 이후의 제 삶과 생각들을 기록하는 곳입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 실패의 경험들을 진실되게 담아내고자 해요. 현재 저는 자유롭고 평안한 삶 속에서 기초를 견고히 하는데 힘쓰며, 창조적인 일들을 해내고 있고, 앞으로 더 잘 될 것입니다.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욱 잘 될 운명입니다.'



#고양이치료법

#아플땐웅크려도괜찮아


산, 바다, 사계절과 같은 자연과 동물의 삶을 면밀히 관찰하며 우리는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그 중 동물은 사회화된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도 한데,

언젠가 위장병이 있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욕심 많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과식하지 않기 때문이란다(애완동물의 경우는 예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가끔은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의 세계를 인간 세계와 대입해보곤 하는데,

예를 들면 매력적인 인간에 대한 고찰 같은 것도 이에 해당한다.

어떤 행동들이 사람의 애정을 불러오는가와 같은.

동물들이 상처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 세 마리(호두[엄마], 콩이[딸], 나비[길냥이])가 함께 산다.

세 녀석 모두 개성이 강해 식성, 행동, 선호하는 놀이와 장소 등이 다르고 출생 배경도 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암컷이라는 점이다.

왼쪽부터 호두, 콩이, 나비

고양이는 생후 6~7개월 정도면 성 성숙기가 찾아오고 첫 번째 발정기를 갖는데,  

이때에 밤낮 가리지 않고 수컷을 찾는 앙칼진 울음소리(mating call)를 낸다.

목이 쉴 정도로 울어대서 안쓰럽기도 하고, 심하게 거슬리는 소리에 집사들도 밤잠을 못 이룰 정도다.

일주일 정도를 그러다 멈추긴 하지만 몇 개월 지나면 또 발정기가 찾아오는 식으로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고양이들은 폐경이 따로 없단다.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새끼를 출산할 계획이 없다는 전제하에 다른 질병에 노출 걱정 없이 건강하려면 반드시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편하다.


늘 인간인척 하는 호두는 새끼도 딱 한 마리만 낳았다.

콩이를 출산한 후에 바로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콩이 녀석은 교미 거부반응이 심해 여러 번 실패하고 결국은 포기했다.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 책임지기엔 부담스럽고 정이든 새끼 고양이들을 남한테 맡기기 것도 영 못 미더웠기 때문이다.

길냥이로 발견된 나비는 고민 없이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세 마리의 고양이가 수술 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특이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아무것도 하질 않는다. 정말 꿈쩍도 않는다.

심지어 밥도 거의 먹지 않는다. 처음엔 그러다 잘못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출처: pixabay

하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을 보낸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꼭 그랬다.

그녀들은 몸이 스스로 치유되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렸다.

본능적으로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갖는 동물.

엄청난 발견이었다.


나는 아플 때, 몸이든 마음이든 기다려주는 것에 인색했다.   

빨리 털고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고, 보듬어 주기는 커녕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숨겼다.

늘 밝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오랜 시간 그래 왔다. 그게 어른스러운 것인 줄 알았다.

나의 상처는 나은 것이 아니라 매번 카펫을 새로 깐 셈이다.

그렇게 한 장 두장 마음의 카펫이 쌓이면서 마음 한구석이 늘 무거워졌고,

당연하게도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도 둔해졌다.


출처: pixabay

고양이들의 회복시간 발견 이후로 나는 상처가 생기면 무조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또 다른 내가 되어 아픈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위로한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잠시 쉬어도 돼. 난 너를 믿어'


바람이 잘 통하는 편안한 곳을 찾아 잠을 청하고, 좋은 책을 읽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서 나에게 해준다.   


지금까지 나의 감정 사이클을 살펴보면,

이렇게 잠시 웅크리고 있는 며칠의 시간 이후엔 어김없이 나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옥 같은 감정도 언젠가는 끝이 났다.

여러 번의 경험들로 모든 것은 분명 지나간다는 것이 이제는 명확해졌기에  

쉬이 휩쓸리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힘이 강해졌다.


누가 그러던데,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살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있다.  

삶, 일, 인간관계의 실패로 슬픔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바닥까지 내려앉는 기분.

그럴 땐 웅크리자. 나만이라도 나를 위로하고 충분히 기다려주자.

괜찮아지면 마음이 신호를 보낼 것이다.


'자, 일어나! 다시 움직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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