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질문하기

엄마의 노트

by 봄치즈

“엄마 여긴 어디예요? 와 사람들이 정말 많다!”


책장 한편에 앉아 앨범을 보던 아들이 사진 한 장을 가져오며 물어본다. 요즘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사진 보기를 즐기는 아들. 이곳은 어디냐, 뭐 했냐, 왜 갔냐, 이 사람은 누구냐. 아이의 여러 질문에 답하다 보면 단 한 장의 사진임에도 그에 얽힌 수많은 기억들이 하나 둘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그날의 그곳,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유럽 젊은이들에게 큰 축제가 있거든요. 바로 일 년에 한 번, 베를린에서 열리는 ‘러브 퍼레이드’이지요. 아 내일이네요!”


대학교 2학년, 그야말로 배낭하나 달랑 메고 두 달여간 친구들과 떠난 배낭여행. 모든 사람들이 다 가는 뻔한 관광지에 발도장만 찍고 오고 싶지 않았다. 한 나라에 적어도 10일 이상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찐 장소를 찾아가 보자’ 결심했다. 덕분에 배낭여행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곳을 많이 접했다. 프랑스 아르카숑 해안을 가로막고 있는 크나큰 모래 언덕. 수영복 차림으로 커다란 배낭을 메고 등단, 패러글라이딩으로 해변에 도달했을 때의 쾌감은 지금껏 생생하다. 영국 화이트 섬에서 관람한 (비론 먼 발치였지만) 세계 적인 요트 대회 또한 기차에서 만난 현지인의 추천 이벤트였다. 요크셔의 폐허, 톱위슨스에 방문하여 그리도 보고 싶었던 <폭풍의 언덕>의 거목을 마주한 그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 현지인이 추천한 것은 베를린에서 열리는 ‘Love Parade’이었다. 이 날 만큼은 유럽의 모든 젊은이들이 모여 광란의 밤을 즐긴다니 그들만의 파티가 너무 궁금했다. 몇 달 전부터 근처 숙소 예약은 끝났을 것이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20대 만의 체력이 있지 않은가. 바로 목적지를 바꿔 밤기차로 베를린행을 티켓을 샀고, 축제 속에서 밤을 지새운 후 다음 날 새벽녘에 기차를 타고 원래 가고자 했던 스위스행을 이어 가기로 했다.

기차 2층 침대에서 배낭을 껴안은 채 (당시에는 배낭을 겨냥한 기차 도둑이 많았다) 불편한 밤을 보내고 도착한 베를린. 기차역을 내린 순간 처음 맞닥 뜨린 그들만의 축제는 신기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이미 베를린 여러 시가는 유럽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로 가득 차 발 디딜곳이 없었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음악소리, 노랫소리, 구호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빠른 스캔과 함께 적응력을 발휘 주변을 천천히 탐지하기 시작했다. 페인팅 바디를 선보이는 한 사람부터, 스피커를 들고 다니면서 격렬한 춤사위를 선보이는 사람들, 종이 조각으로 중요부위만 가린 채 ‘동물 보호’ 피켓을 들고 다니며 풍자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사람들 등 광란스러워 보이는 그들의 각기 다른 행위 속에는 저마다의 자유로운 의견들이 담겨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까 베를린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약 20대의 오픈 트럭, 자동차들이 줄지어 천천히 지나갔다. 다양한 페이트 및 여러 장식들로 꾸며진 차에서는 각기 다른 장르의 노래들이 울려 퍼졌고, 걸어 다니던 사람들은 자유로이 차에 올라탔다 원할 때 내리기를 반복했다.


“여기 봐봐! 하나 둘 셋!”


언제 올라갔는지 함께 갔던 친구들 중 한 명이 트럭 꼭대기 위에 올라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올려 보자마자 사진을 찍은 친구. 아들이 내게 갖고 온 사진은 바로 이 사진이 이었다.


수많은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찬 길 중앙에서 걸어가면서 유일하게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는 나. 그날의 한 명 한 명은 모든 달랐다. 발산하고자 하는 것들도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사회적 이슈를 말하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내면과 행복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다양한 표현 방법은 물론 그것을 자유로이 발산하는 그들의 거리낌 없는 행동과 열정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21살이 될 때까지 그저 당연한 수순인양, 내 앞에 주어진 길은 조용히 따라온 나에게는 나만의 주체성이 있었는가. 그날 이후 내 삶을 주도하는 내 안의 주체성이라는 것에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20대의 젊은이라면 직면하게 될 여러 고민들을 바라보는데 새로운 관점을 주었다. 이러한 과정이 없었더라면 이후 새로이 복수 전공에 도전하고 ‘여자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다’라는 주변의 권고를 무시하며 내가 원하는 분야를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들이 건넨 그날의 사진을 한 동안 바라봤다. 동시에 당시에 가졌던 생각들이 고스란히 ‘지금의 나’에게로 옮겨본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나.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 내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잘 가고 있는가.


또다시 시작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항상 그랬듯 당장은 막막함으로 다가올지언정 이 같은 과정이 아주 조금씩, 보이지 않게 나 자신을 미묘하게 옮겨갈 것임을 나는 안다. 아니 그러리라고 믿고 싶다. 그러기에 ‘마냥 반갑지 만은 않은’ 이 질문들에 대해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 노트에 적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첫 어른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