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사춘기 활용
가끔씩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외계인 같은 언행으로 사춘기가 왔음을 알려주는 큰 아이. 내 삶에 긴장감을 더해준 아이의 사춘기 신호가 여전히 낯설면서도 반대로 고마운 부분도 있다.
“엄마, 우리 마스크팩할까.”
티셔츠와 후드티 몇 장, 블랙 레깅스 7개만 있으면 충분하다던 아이가 슬슬 자신의 외모 및 옷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외모 치장에만 신경을 써서 골치 아프다’는 엄마들도 많지만 도통 옷에 관심도 없고 쇼핑하는 것 또한 매우 귀찮아하던 아이가 딸아이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는 게 내심 반가웠다. 내 어릴 적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 또한 그다지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없었기에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삶의 여러 부분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과거 ‘청바지만 입지 말고 다른 애들처럼 미니스커트도 입고, 미팅도 하러 나가보라’고 말했던 우리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게다가 아이의 심한 사춘기 바람으로 힘들어하는 선배 엄마들을 보고 마음을 준비를 예저녁부터 하고 있던 터 (입까지 살아있는 여자애들 사춘기가 더 피말린단다). 사춘기의 절정에 도달하기 전, '보다 많이 아이와 소통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야 겠다' 생각할 즈음, 이에 이용할 소재로 ‘미용’이 하나 더 생겼으니 나로선 반가울 따름이다.
이 전부터 남편이 둘째 아이와 야구를 하러 가는 날이면 딸과 단둘 분식 데이트를 하곤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떡볶이, 김밥, 파스타등을 먹으며 아이의 학교 생활 및 친구들 이야기도 듣는 게 매우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페이셜 마스크를 해볼까 제안했더니 생각보다 너무 좋아한다. 아이와 함께 페이셜 시트 마스트를 붙이고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어보니 이것이야말로 가성비 좋은 최고의 데이트가 아닌가! 따로 외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아주 편한 자세로 거실에 벌러덩 누워, 듣는 사람도 없겠다 마음껏 아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박장대소하며 들어줄 수 있으니 일석 삼조다.
무엇보다 몇 주가 지나자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건 나였다. 평소에는 항상 뒤로 밀리게 되는 얼굴 투자. 사실 집에서는 로션 하나만 챙겨 바르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의 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좋은 피부를 물려준 엄마에게 백 번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날이 푸석해지고 건조해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알면서도 미용에 있어서 만큼은 왜이리 부지런을 떨게 못하는지.
이런 게으른 엄마조차 단번에 움직이게 하는 건 역시나 아이다. 아이가 시트마스크를 건넬 때마다 무조건 하게 되니 (함께 하자는 사춘기 아이 요청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덕분에 최근 정기적으로 내 얼굴을 투자를 하고 있다.
“잘 지냈어요? 얼굴 좋아 보이네요!”
우연히 우체국에서 만난 동네 엄마. 어떤 말보다도 기분 좋은 말이다. 누굴 만날 때마다 학창 시절 이후 ‘살이 빠진 것 같다’ ‘왜 이리 말랐니’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 터. (‘건강하고 예뻐 보인다’는 칭찬은 유일하게 살이 오른 큰 아이 임신 기간 뿐이었던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웬만해선 듣기 힘든 칭찬 멘트에 하루종일 룰루랄라다.
“이쁜이~ 우리 이따가 시트 마스크할까?”
조금 전까지 '학교 숙제가 많다' 불만을 쏟아내던 딸아이는 바로 ‘예스’를 외친다. 동시에 아이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돈다. 뾰로통한 딸 기분도 업시켜주고, 내 얼굴도 예뻐지고.
미용에 관심 갖게 된 딸의 감사한 사춘기. 현명히 잘 활용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