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해 속도감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빨리 걷는 것보다는 주변의 것들을 보며 천천히 걷는 걸 더 좋아하고, 식사도 음식 하나하나 음미하며 천천히 먹는 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한 모금에 생각 꾸러미 하나씩 풀어놓는 걸 즐기니 항상 1/3의 커피는 차갑게 식어있다. 누군가 다가올 때도 저돌적으로 오는 것보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오는 사람을 선호하는 걸 보면 나라는 사람은 속도감이 주는 스릴감보다는 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 생활 패턴을 들여다보면 그 속도감이 빠르다.
아이들 등교준비 및 도시락 싸기에 여념 없는 아침시간. 일어나자마자 이제는 유니폼이 된 티셔츠와 레깅스를 단 몇 초만에 입는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후 부리나케 약국에서 감기약을 픽업한 후 종종걸음으로 마트에서 장을 본 후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들러 반납할 용품을 붙인다. 일을 시작을 알리는 오전 9시 전까지 자자란 일들을 최대한 많이 마쳐야만 한다. 남편이 회사 출근을 해서 아이들 픽업까지 해야 하는 날이면 그 시간을 만회하고자 일 처리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점심은 스킵하거나 국에 말에 후다닥 먹는 게 보통. 방과 후에는 아이들의 일정까지 가미되니 그야말로 1분 1초를 허투루 보내는 게 없다.
천천히 걷는 삶을 즐기고픈 마음과 종횡무신 뛰어다녀야만 하는 현실의 간극에서 종종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하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길게 호흡하기’.
4여 년 전, 요가를 시작한 후 자연스레 명상에 관심을 가지고 되었다. 여러 책 및 강의를 들으면서 무조건 가부좌를 틀고 앉아해야 하는 명상이 아닌, 먹으면서, 걸으면서, 일하면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명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자주 내 삶에 반영하고 있다.
오늘도 그렇다. 이번 주 내로 마무리해야 할 프로젝트가 여러 개다. 아침부터 분주해지는 몸. 마음의 속도가 쫓아갈 수 없었는지 급기야 조급증까지 들어섰다. 때 마침 잠깐의 명상시간을 위해 2시간 텀으로 맞춰두었던 진동알람이 울린다. 잠시 정시. 긴 숨을 마시고 내쉬어 본다.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는 듯 내 마음이 원하는 페이스로 현실 속의 속도가 늦춰지는 순간이다. 이후 찾아오는 마음속 평온함.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창밖의 흔들리는 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그를 비추는 따뜻한 햇살에 그 흔들림도 서서히 멈추는 듯.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조금은 느린 속도로 타이핑을 시작한다. 오늘도 이렇게 마음과 현실을 타협시키며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