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세상 무엇보다 무겁게만 느껴지는 눈꺼풀이지만 주말 아침이면 신기하게도 진동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진다. 머리맡에 챙겨 둔 트레이닝 복을 살며시 주워 든 후, 잠든 남편이 깰까 까치발로 나올 때의 그 설렘이란!
햇살이 따사로워지는 봄이 오면서 다시금 시작한 '나 홀로 아침 산책'. 빼놓을 수 없는 요즘의 낙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나 홀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책 그리고 남편과 하는 하이킹도 좋아하지만 그때는 누릴 수 없는 '조용한 여백'이 여기엔 있다. 그 여백 속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듣게 되는 내 발자국 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지저귀는 새소리는 마치 그 위에 멜로디를 얹히는 듯하다. 자연의 소리에 어느덧 내 마음이 두둥실- 그에 맞춰 춤을 추니 어느덧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느낌이다.
주중에는 아이들 등교 이후부터 회사일 시작 전까지 약 20-30분만 할애할 수 있는 아침 산책 시간. 그러다 보니 후반에는 일 시작 시간을 고려해 걸음이 바빠지기 일쑤다. 그러나 오늘은 즐거운 주말 아닌가! 학교도 회사도 닫았으니 누가 빨리 오라 재촉하는 이 없고, 게다가 아이들마저 아침잠이 많으니 주말이야 말로 '혼자 산책'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즐거운 날이다.
오늘은 평소 걸었던 보폭을 줄여 평소의 반폭으로 좁혀 걸어 본다.
웬만한 일에는 불평불만이 없는 초긍정 마인드인 나지만 유일하게 남편에게 짜증을 내는 시점이 있다. 같이 걷는 남편의 걸음걸이가 갑자기 너무 빨라질 때다. 이상하게 짜증이 난다. 다른 사람보다 걸음이 조금 느리기도 하지만 유난히 넓은 남편의 보폭을 맞추려다 보면 거의 뛰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숨이 차 힘들고, 걷는 게 일처럼 느껴지면서 어느새 '함께 걷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러한 내 스타일을 알기에 남편이 의도적으로 천천히 걷는 걸 느낄 때도 있지만 나만큼 걷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아마 나를 100%는 이해하지 못할 듯도 싶다.
그런데 '혼자 산책'을 하면 다른 이의 보폭과 걸음 속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그 시작부터 세상 마음이 편하다. 오늘따라 더욱 천천히 걸어보자. 내 마음의 속도에 따라 굼벵이처럼 걷다 보니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야생화의 작은 하늘거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갑자기 별별꿈 모임을 통해 며칠 전 읽었던 나태주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꽃들아 안녕!
꽃들아 안녕
나태주
꽃들에게 인사할 때
꽃들아 안녕!
전체 꽃들에게
한꺼번에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꽃송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꽃들아 안녕! 안녕!
그렇게 인사함이
백번 옳다.
시인은 전체 꽃이 아닌 꽃송이 하나하나에 집중하라고 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했다.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집중함이 백번 옳기에. 발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하늘거리고 있는 야생화 한 송이 한 송이를 바라본다. 더불어 나의 지난 주중의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숨 가쁘게 돌아가기만 한 듯한 한 주. 그 전체의 뭉텅이를 하루하루 요일별로 나누어 떠올려본다. 그리고 시간 별로, 나아가 매 순간 별로 계속 나누어 들여다본다.
'이번 주 너무 바빴어.' '이번 주 맡은 회사 프로젝트가 끝이 안 보여.' '학교 행사가 너무 많은 데다 심지어 도시락 두 개 씩 싸야 했었어.' '차 하나로 계속 운전만 해야 했었거든." "게다가 물건도 계속 잊어버렸어."
어젯밤 오랜만에 전화 통화한 언니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작게 쪼개여 보니 그 순간들 모두가 비단 피곤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아침 아이들 도시락을 싸기 전 아이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우동 국수를 냉장고에서 발견하고 기뻤더랬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싸는 순간 유난히 즐거웠던 것 같다. 차 사고로 차 하나가 사라지고 두 아이를 번갈아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몸은 엄청 피곤했지만 사실 늘어난 아이들과의 차 속 수다가 재미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바로 직전 일어났던 해프닝을 들으면 어이없이 터지는 폭소. 내 스트레스까지 같이 날아가곤 했다. 가게 쇼핑 후 재킷을 두고와 다음 날 이른 아침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이른 아침부터 고생한다'며 주인아주머니께서 꺼내 주신 공짜 모닝커피. 당떨어진 나에게 최고로 달콤했던 커피였다. 이번 주 회사 프로젝트에서 계속 발견되는 오점들. 여러 애로 사항에 괴로웠지만 윗 팀장이 미팅에서 나의 강점과 도움에 대해 고마워했을 때 그날은 일하면서도 하루 종일 콧노래가 나왔다.
생각해보니 이번 주 내 일상들 매 순간은 사실 여느 때보다 좋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걸으며 돌아보니 이번 주 한 주가 '바쁘고 정신없었던 한 주'에서 '열심히 뿌듯하게 보낸 시간들'로 바뀌게 되고, 그에 따라 걸음걸이도 더욱 가벼워진다.
다시금 돌아보고 그 순간 속 나를 바라보고
내 마음과 대화하며 스스로 힐링하는 기쁨
혼자 산책이 주는 선물을 알기에 어느 것에도 양보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
그것을 알고 만끽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하다.
"애들아 여기에서는 먼저 좌우를 살펴보고 차가 없음을 확인하면 가는 거야. 자, 지금 가면 돼!" 앞 길가 모퉁이에서 한 아빠의 소리. 곧이어 아빠 자전거를 따라 그 뒤를 이어 달리는 두 아이들. 그들의 '같이 하는 자전거 산책'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띠는 순간, 아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기로 했지! 집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홀로 산책'으로 내 마음이 풍요롭게 가득 찼으니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같이 나눌 '수다와 웃음'으로 마음속 꽃을 피울 차례다.
함께 할 또 다른 행복감에 기대로 빨라진 발걸음이 더욱 신난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나오는 아침인사.
이쁜이들~ 굿모닝! 우리 동네 산책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