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의 회식 문화
"2022년 올해 연말 파티도 작년에 이어서 1월 초에 할 예정입니다.
1월 O일 수요일 오후 시간을 비워두세요. 4-7시 장소는 OO이니 교통체증을 고려해서 이 날은 일을 일찍 마치고 참석하길 권합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가족이나 지인 한 명만 초대할 수 있으니 미리 알려주세요.
베지터리안 메뉴는 따로 있으나 알레르기 및 특이 사항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날, 모든 직원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인 10월, 회사 전체 회의 시간에 받은 공지 사항이다. 일년에 한 번 있는 회사 연례 행사에 대한 설명으로 미리 그 날은 비워두라 알리는 것이다.
처음 미국 회사에 들어와서 목도한 여러 일 중 가장 내게 신기한 것 중 하나는 회사 회식 문화다.
(물론 내가 한국 직장 생활을 했을 때가 오래 전이니 지금의 한국 문화와는 사뭇 다를 수도 있겠지만)
부장님의 기분에 따라 저녁 시간 갑작스럽게 잡히는 회식날은 사실 거의 없다. (옆팀은 팀장님이 가족을 유학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되자 거의 일주일에 2번 씩 회식을 하고 있었다) 일 년에 거의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미국 회식. 이 또한 회사를 위한 '친목, 단합도모'를 위하기 보다는 그 간 회사를 위해 노력해 준 직원들을 독려하고, 회사의 성과를 공유하면서 그것에 대한 것들이 모두 직원 덕분이라며 칭찬을 전하는 전체 자리다. 가족들을 초청해서 함께 하는 것 또한 너의 가족이 "이 만큼 우리 회사의 성공에 큰 보탬이 되었다" 말해주기 위함. 늦은 퇴근으로 배우자에게 눈총을 받아야하는 한국 회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할 수 있다. 물론 팀웍을 중요시하는 것 또한 미국 직장내 분위기이기에 자체적으로 팀별 액티비티를 권하길 한다. 대부분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모두 같이 모여 점심을 먹는데 이 때 회사내 카페테리아에서 먹기도 하기, 혹은 다같이 레스토랑에서 먹기도 한다. 평일 보통때는 점심을 각자 알아서 먹는 편. 우리 회사의 경우 따로 점심 시간이 없고 자기가 원할 때 카페테리아에서 먹거나 집에서 싸온 샐러드를 일하며 먹는다.
누구를 위한 건배사인가
한국에서 회식할 때는 항상 팀장님의 구호에 맞춰 'OO를 위하여'를 외쳤고 첫 잔은 '기본 원샷'이란다.(지금도 그럴까?) 구호 중 'OO'에는 대부분 '회사이름'나 내가 소속된 '팀 이름', 혹은 우리 팀이 사활을 걸고 있는 '프로젝트 이름'이 들어간다. 세련된 유행어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이 역시 일의 성과과 연계된 것. 미국 회사 연말 파티에서는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긴 하나 대부분 사장의 간단한 인사말 이후 연말 분위기답게 서로의 잔을 부딪히며 '메리 크리스마스' 아니면 '해피 뉴 이어' 같은 인사말 정도다. 미국에서 한국식 건배사를 본 적도 없지만 굳이 이러한 모토를 지금의 회사에 적용해보자면 이들은 뭐라고 말할까. 그 동안 회사를 위해 일한 '나를 위하여' 정도가 들어가려나. 어쨋든 마인드 자체가 무조건 '회사를 위한 개인'이 아닌 '개인을 위한 회사와 서로의 윈윈'이 있을 뿐이다.
술 vs 음식
한국 회식에서 빠지기 힘든 것이 바로 술 문화. 사실 술자리에서 이야기 나누고 웃고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술을 되로 마실 수 있는' 친탁이 아닌 '한 모금만 마셔도 온몸이 빨개지고 밤잠을 뒤쳑여야 하는' 외탁을 했다. 한국 회사 생활을 해보는 사람은 알 것이다. 회사 내에서 '술을 아예 못마시는'것은 무조건 불이득이다. 천만 다행으로 나름 눈치껏 행동했고, 평소 선배들에게 이쁨을 받았기에 내리 원샷을 강요하는 상무님을 만났을 땐 '모르는 척' 선배들은 내 잔을 빼돌려 물로 채워주었다. 더불어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지는 턱에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마신 줄 알고 '얼른 자라'며 재킷을 덮어줬고 덕분에 혼자 구석에서 숙면을 취한 적도 있다. 2차 장소로 노래방이 선정되면 내 자리는 당연히 모니터 앞. '테이블 앞에 앉으면 술을 먹어야 하니' 차라리 몇 시간 동안 서서 때로는 코러스를 넣고 노래가 끊기지 않게 리모콘을 빨리 돌리는 담당을 했다.
이렇듯 듣기만해도 체력 방전을 부르는 한국의 회식 문화와 비교해 본다면 당연코 난 이곳 미국 회식 문화를 사랑한다. 미국에서 술은 그저 취향일 뿐이다. 대부분 파티 시작 전까지 부스로 가서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고 (굳이 와인이나 샴페인이 아니어도 된다) 분위기를 무르익게하는 장식용으로 이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된다. 음식을 먹을 때도 그저 예의로 따라 둘 뿐 내키지 않는다면 안먹으면 그만이다. 고로 내가 느낀 미국 회식 날은 '술'이 주가 되기 보다는 맛있는 음식이 주가되는 '식사'시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이다. 메뉴 또한 항상 비건 메뉴가 따로 있고, 알레르기 특이 체질이 있다면 미리 본인이 원하는 메뉴를 미리 주문해 놓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맞춤형 식사 코스라 할 수 있다.
회식 시간도 회사를 위한 시간
미국 연말 파티에서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2-3시간. 이 날만큼은 레스토랑으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걸릴 교통체중을 고려해 빨리 퇴근하기를 종용한다. 또한 파티 또한 회사와 관계된 일의 하나로 여기니 이 모든 시간들은 회사 일하는 시간으로 분류되어 내 타임카드에 체크해 넣어야 한다. 그만큼 공과사가 확실하고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때에는 회사가 배려해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 회사가 연말 파티 날짜를 정하는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자고로 '연말'이라면 12월에 해야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 대부분 중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가족들과 일주일 정도 (많게는 이주까지) 가족들과 휴가를 간다. 우리 회사 사람들 또한 대부분 휴가를 가는데 그 시기 또한 조금씩 다르다 보니 작년부터 연말 파티 날짜를 1월로 바꾼 것이다.
연말 회식을 1월에 하다니.
다소 의아한 일이긴 하지만 가족이 있는 엄마로서는 '너무 감사한' 미국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일 년 내내 '바쁘게 일하는' 엄마 모드였으니 연말 크리스마스 연휴때라도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가족들과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가 맘껏 쉬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낯선 그 밖의 다른 직장 문화들이 있으나 10년 차가 넘어가는 지금, 이제는 나쁜 건 그러려니 흘려보내고 좋은 것은 120% 이용할 줄 아는 '똑똑하고도 노련한 스킬'을 갖추게 됐다.
그런데 나보다 더 똑똑한(?),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을 발견했다!
잠들기 전 남편에게 회식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야, 다른 건 몰라도 미국 회식 문화는 참 마음에 들어. 일 년에 한 번인 것도 감사하지만, 우리 회사는 심지어 1월에 한다니까. 미국은 정말 가족 중심적이야."
"그래도 12월에 연말 파티를 더 많이 하긴 하는데 자기네 회사가 유독 배려를 많이 해주는 편인 거지."
"그럼 자기 회사도 12월에 해? 언제 하는데?"
"아 지났어."
(이게 무슨 말인가. 집돌이인 이 남자 분명 이 번달 저녁시간에 나간 적이 없었는데...)
"사실 지난주에 회사 연말파티 있었는데 요새 허리도 계속 아프고 나가기 힘들어서. 그냥 아이들 winter concert 있다고 했더니 나오지 말라고 하던데? OO랑 OO도 안갔더라고. 그리고 실제로도 그날 아이 학원도 데려줘야겠고."
"진짜?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내가 얘 데려다 주거나 얘 스케줄 조정하면 됐는데."
"괜찮아. 어차피 내 년에 또 할 텐데 뭘."
세상에. 그의 말에 기가 찼다. 어찌 그럴 수가 있지?
한국이었음 이 남자는 분명 일찌감치 잘렸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남편 말로는 자기 부서에서 안나온 사람들이 자기말고 또 있더란다. 이는 우리 남편의 개인적인 밉상 행동인건가, 아니면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인건지. 뼈 속까지 한국인인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암튼 결론은 남편의 말처럼 우리 아이는 그 날(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르는) 학원에 잘 갔고, 우리 남편은 회식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소귀의 목적을 이루는 '난 놈'이었다!
그를 따라가려면 한 참 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