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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Nov 27. 2023

비누

고등학생 시절엔 얼굴 피부가 좋지 않았다. 그 나이 애들이 으레 그렇듯이 내 얼굴에도 붉은 여드름이 하나둘 생겼다. 아주 어릴 때는 피부가 하얗고 좋았기에 우둘투둘한 피부가 불그죽죽한 그런 상황이 낯설었다. 누구 탓을 할까 골몰하던 중 목욕탕에서 내 얼굴을 이태리 타올로 벅벅 문지른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제야 그 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거울을 봐도 봐도 나아지지 않았고 조금 심한 날이면 피부과에 가서 여드름도 짜보고 좋다던 연고도 처방받았다.


일요일이면 친구와 친구네 어머니와 함께 성당에 갔다. 하루는 친구 어머니가 뭔가 대단한 비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말했다. "우리 세진이도 여드름이 심했는데 다이알 비누로 시간 날 때마다 세수를 하니까 많이 좋아졌어." 다른 비누는 안 되고 특히 다이알 비누여야 한다고 했다. 얘기를 들을 땐 사실 무슨 비누를 얘기하시는 지도 정확히 몰랐다. 피부를 다이아처럼 만들어 준다고 다이아 비누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슈퍼에 들러 살펴보니 다이알 dial 비누라고 미제 비누가 있었다. 이게 기름기를 쏙 빼서 얼굴 피부를 담백하게 만들어 줄 그거인가. 비장의 아이템을 얻은 마냥 손에 꼭 쥐고 돌아와서는 틈만 나면 세수를 해보기로 했다.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컸다. 듣기로는 반장도 하고 주변에 싹싹해서 친구들도 여럿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말을 트게 되었는데 그 친구 옆에 서면 크지 않은 내 키가 더 작게만 느껴졌다. 어쩐지 붉어진 피부가 더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느낌에 얼굴 온도가 한껏 높아졌다. 다이알 비누는 언제 효과가 나타날까. 얼굴이 그렇게 뜨거워진 날에는 집에 와서 세수를 여러 번 했다. 듣기로는 두 번 정도 세수하면 된다고 했지만 좀 더 효과가 있을까 봐서 세 번, 네 번도 했다. 빨리 피부가 좋아지면 쭈뼛대지 않고 그 친구와도 편안히 얘기할 수 있을까. 그날을 기다리는 사이 그 친구가 부추겨서 극장도 가 보고 인생 처음 버거킹도 가 보았지만 아직 피부가 좋아지려면 조금 멀었기에 난 계속 쭈뼛대기만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산 건 가짜 다이알 비누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그 좋다던 효과는 전혀 없었고 그 친구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며 나의 축하까지 받아갔다. 속상한 마음에 학교에서 집에 가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한동안 나는 그렇게 내 부족함을 탓하며 침울하게 지냈었다.  


그때부터 한참이 지난 어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 사진이 들어있는 폴더를 클릭했다. 그 속에는 지금 나보다도 잘 나고 생기 있어 보이는 고등학생인 내가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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