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이 되면 어떤 사람이 기억날 때가 있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한 계절 안에서만 했던 경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마음에 떠올려보면 그 계절 옷차림으로 생각이 난다. 겨울에 만났던 그대를 예로 들자면, 빨간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던 귀여운 모습만 떠오를 뿐, 반팔이나 가벼운 옷차림을 한 모습은 본 적이 없으니 기억조차 나지 못한다.
옷차림만이 아니다. 함께 먹었던 음식도 계절을 반영한다. 겨울에는 빨리 따뜻한 걸 먹자며 종종걸음으로 이동하고는 했다. 홍대 앞 생태찌개 가게를 많이 갔었는데 맛이 있지는 않았었다. 그 이유로 금방 폐업한 것이겠으나, 그래도 위치가 가기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술집 분위기라서 그랬는지, 우리는 종종 그곳에서 만나 심플한 맛이 나던 국물을 먹으며 때로는 리필도 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고는 했다. 나는 소주를 잘 마시지 않았는데 그때는 어쩐지 겨울과 잘 어울리는 술 같아서 그러고는 했었다.
감정적인 말다툼도 겨울에는 좀 더 안쓰럽다. "그러지 말고 잘해 줘." "대체 무슨 소리야." 지금은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은 그런 말들도, "난 이렇게 못해." "아냐, 조금 더 만나보자." 애처로운 이야기도, 추운 겨울밤 야외에서 듣다 보면 계속 듣고 있기가 어려웠다. 추운데, 나중에 하면 안 되느냐 재촉하던 나를 바라보던 그대의 눈가에 또르르 눈물이 고였다. "그러지 말고 잘해 줘." 그때 우리는 눈이 미처 녹지 않은 고가도로 밑 그늘진 곳에서 한참을 실랑이했는데, 잘해주라는 그대의 요청에 대해서는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서로 갈 길을 갔었다.
그 뒤 겨울이 여러 번 지난 언젠가의 여름에, 여름 도시 같은 부산에서 그대를 다시 만났던 일이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은 반팔 차림의 그대를 마주하고 있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지난 일들은 지난 일이잖아." "다음에 오면 같이 와인이라도 한 잔 마시자." 우리는 왜 그렇게 추운 겨울에 고가도로 밑에서 발을 동동 굴렀었는지 잠시 잊어버렸나 보다. 여름에는, 부산에서는, 만나지도 헤어지지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