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2호선, 3호선 교대역은 갈 길 잃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곳이다. 원래 이곳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 모여서 잠시 머무는 대합실 같은 곳.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어디죠?"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하는 행인들의 질문. 법원에 가는 게 나에게는 일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일생일대 처음 겪는 중대사이다. 법원에 가면 무슨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사람들.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길을 걷다 보면 돈을 왜 갚지 않냐는 시끄러운 전화를 하는 사람들을 스쳐 지난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은 덤이다. 무슨 대법원장, 국회의원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저런 인맥을 부여잡고 돌아가던 것인지.
2.
교대역 사거리에 있는 KFC에는 생기 없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서울 어느 번화가에서나 볼 수 있는 유행에 민감한 젊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갔는지. 이곳에는, 걱정이 얼굴에 뿌려진 사람들, 도대체 왜 거기 있는지 모르겠는 노인들, 인근 재수학원에 다니는 수험생들, 아무것도 안 시키고 자리를 맡아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 판매원들, 어쩐지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법조 브로커들, 그들이 식당 안을 온전히 채우고 있다. 그 애매하고 탁한 공기가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든다.
3.
언젠가부터는 종업원이 주문을 받지 않게 되었다. 큰 화면을 장착한 주문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세상 흐름에 뒤쳐진 사람들은 그 앞에 절절매고는 한다. 보다가 답답하면 가끔은 "어르신 뭘 드시려고 하세요?"라 말하며 돕기도 한다. 선행일까 아니면 빨리 앞사람을 처리해야 내가 주문할 수 있다는 이기심일까. 선행 역시 이기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론은 이런 걸 두고 한 말이 아니지만. 어쨌든 옆사람이 보기에는 선량한 청년처럼 보이겠지. 알량한 뿌듯함이 잠시 생긴다.
4.
치킨 한 조각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서는 서둘러 그 우울한 곳을 빠져나온다. 산책이라도 하려 저쪽 교대 운동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전단지를 나눠주려는 아주머니가 온다. 좋은 마음으로 다섯 번쯤 받았는데 또 같은 전단지를 주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어쨌든 옆사람이 보기에는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는 불량한 청년처럼 보이겠지.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