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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n 22. 2023

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빠앙~

  철커덕, 철커덕 소리는 조카아이가

집밖으로 뛰어나가는 신호다.

TV를 보고, 게임을 하다가도

 심지어 얼핏 잠이 들었다가도

조카는 기차소리가 들리면

집 앞, 둑방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곤 기차가 사라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오랫동안 정성껏 손을 흔들었다.     


 기차 안에 사람이 있든 없든,

여객선이든 화물선이든 상관없이

아이는 이 의식을

꽤나 경건하고 진지하게 치르곤 했다.

어쩌다 한번 놓치기라도 할 때면

큰일이 난 것처럼 시무룩해하거나

상심에 빠져있었다.  

    

  도심에서 태어나 자랐던 아이에게

기차는 강원도 두메산골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찾아오는 즐거움이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그리 자주, 그리 오래 머물지도 않았는데

조카아이에게 움직이는 기차는 놀라움이었고

휴대폰 게임보다 흥미로운 대상이었던 것 같다.  

   

  시골이라 마땅한 놀거리나 장난감은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기차는

한동안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보니 나는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자동차 생활로 잊고 살았지만

 나도 한 때, 조카만큼

기차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다.    

 

*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는

00천이라 불리는 하천너머 산 밑에

 아주 오래된 기찻길이 있다.

집안에서도 기차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매일 여러 대의 기차가 다닌다.


이 기찻길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나는 도로 위 자동차와 횡단보도보다

기차와 건널목을 먼저 알았다.


누군가는 굉음이자

소음으로 여길 수 있는 기차소리가

내게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ASMR이었다.     


  깊고 깊은 산골에서 레일 위로 달리는 기차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교통이동 수단이자

문명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신작로가 생기기 전까지

외부와의 연결은 모두 기차로 이루어졌고,

그 통로가 ‘000 역’이었다.


아주 작은 역사였지만 어릴 적 내게는

거대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나는

늘 이 역을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문이라 생각했다.


우리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꽤 오래 걸어가야 했지만

 당시 국민학교라 불리던

내가 다녔던 시골분교가 역사와 가까이 있어서

매일같이 마주했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학교 초입에는

건널목이 설치되어 있어서 등교나 하교 때,

반드시 지나가야 했는데

나는 이 지점이 꽤 흥미로웠다.

기차가 들어오면 건널목에서는

딸랑딸랑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와 긴장과 동시에

설렘을 주었기 때문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무엇이든 빨아들일 듯 몰아치는 거센 바람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를 실어간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 같았다.      

  

그래서 기차가 떠나간 후

제 자리에 남아있는 나를 발견하면

 기차가 지나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실망스러움은 있었지만

 기회는 꼭 올 거라는 믿음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다 보니 평행선으로 이어진

레일을 지지하고 있는

시커먼 침목의 기름 냄새까지도 좋았다.

그 냄새를 따라가면 그 끝에는

내가 상상했던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릴 것만 같았으니까.     


하루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국민학교와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000 역에는

당시 출퇴근 시간과 정오 시간에 맞춰

여객열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나가면

정차하는 기차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기차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역에 나가곤 했다.

차마 기차표를 끊을 수는 없었다.

내게는 그럴만한 돈도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하는 가에 대한

뚜렷한 목적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역에 나갔던 이유는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나는 그 사람들을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며

 찰나의 상상으로 잠깐의 행복에 빠지곤 했다.

나도 언젠가 여객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처럼

기차를 타고 어디로든 떠난다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이 기분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금방 슬픔과 우울로 변했지만

매일 마주하는 기차는

나의 나쁜 기분을 토닥토닥 어루만져주었다.       


*     


  내가 자라는 동안 마을에는

기찻길과 또 다른 평행선을 이루며

신작로가 들어섰다.

비포장도로였던 길이 아스팔트길로 변했고,

사람들은 기차보다 버스와 자동차를

더 많이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고

나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곳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나니

아이들도 사라졌고

기찻길 앞에 있던 초등학교는 폐교되었다.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이동통로였던 000역은

새로운 역사가 들어섰다가

사람들의 왕래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 되어 버렸다.


그 사이 나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러는 동안

내 생애 첫 학교도, 첫 기차역도 사라졌다.     


  하지만 부모님 댁에 가면

여전히 그 옛날 그대로의 철길이 있고,

그 위로 달리는 기차가

잊고 살았던 기억을 이어준다.


조카아이와 함께 둑방에 올라가

지나가는 기차를 보고 있으면

시간의 태엽을 감아

다시 그때의 풍경과

상상력이 많았던 어린 나에게 닿는다.


 그러면 나도 어린 조카아이처럼

기차를 향해 있는 힘껏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기차를 타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어린 나와 마주하며 안부를 전한다.      


‘난 지금

네가 기차를 보며

상상하고 궁금했던 그 세상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라고.     



- 2023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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