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비 Jan 13. 2020

천안 광덕산에 올라서서

함께라서 가능했던 산행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

#1.
광덕산의 명성을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초보자가 오르기에 험악한데 정상에 오르면 딱히 볼거리가 없다고.

전날부터 걱정이 되었다. 혼자 가는 것도, 남편과 가는 것도 아닌, 동반 산행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가는 여행 또는 산행에선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의 페이스도 중요하다. 내 페이스만 집중해도 되지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좀 더 배려가 필요하다.



#2.
이런저런 걱정으로  뒤척였지만 눈을 떠보니 아침이다. 주섬주섬 등산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를 픽업해주러 오는 분에게도 민폐다. 그래서 비가 옴에도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산을 올라갈 수 있을까?



#3.
광덕산으로 가는 길, 다른 곳을 가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어느새 비는 그쳤다. 비가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날이었다. 땅은 축축이 젖었지만 등산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이렇게 다 모였을 때 가보자는 마음으로 우리는 기어이 등산을 시작한다.

#4.
일주문을 지나고, 광덕사를 지나 등산로 입구에 도달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568계단을 지나고, 중간 쉼터인 팔각정에 도달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생각보다 쉬웠다.

흐린 날씨였지만, 몇 명의 등산객이 우리를 지나갔다. 마치 뒷산을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고수들.

"안녕하세요."
건네 온 인사에 수줍게 답한 인사.
그리고 언제 그랬나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들은 사라진다.


#5.
진짜 등산은 지금부터다.
가파른 오르막이 눈앞에 펼쳐진다.

숨소리는 더 거칠어진다.
겨울 산행임에도 온몸에는 땀범벅이다.

앞머리는 이미 떡진 지 오래다. 사진기를 꺼내 들어보지만, 쓸쓸한 겨울은 찍을 만한 게 딱히 없다.

눈이라도 펑펑 내리면 그나마 볼 풍경이 있었을 텐데.



#6.
겨울 산은 하얀색이 아니라 갈색이다.
앙상한 가지, 그리고 채 정리가 되지 않은 떨어진 낙엽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동네방네 울려 퍼지고, 숨소리는 더 거칠어졌다.

숨을 크게 쉴수록 코가 따갑다. 목구멍도 따갑다.
숨을 참으려고 하면 콧구멍이 더 터질 것만 같다.
심장도 터질 것만 같다.

다리가 딴딴해진 기분이다.


#7.
그렇게 기어이 정상에 올랐다.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데, 내가 이 정상에 두 발을 내리다니. 앞으로 어떤 산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정상에 도달하니 볼거리가 없다던 명성과 달리, 겹겹이 쌓인 산의 풍경은 예뻤다.

물론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았다. 뿌연 미세먼지가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안개도 더불어 피어올라 우리의 애간장을 녹였다.

"여기보다 석류봉이 더 전망이 좋대."
안심하려는 찰나, 언니가 나를 일깨워준다.
맞다. 사실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었다.
능선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밧줄이 나오고,
그 밧줄을 이용해 큰 바위를 올라가며 보이는 풍경,
그러니깐 석류봉이 우리의 목적지다.

#8.
광덕산 정상에서 석류봉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길도 아니었다. 제멋대로 난 길은 걸음도 제멋대로 걷게 만들었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가 바로 옆에 있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만 같다.

인터넷 후기를 보면, 석류봉에서 찍은 일출 사진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야간 산행으로 올만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곳곳에 숨은 고수들이 많아!

#9.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석류봉에 도착했다. 먼저 간 언니가 사라져서,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그저 먼저 간 것뿐. 실종은 아니었다.

석류봉은 역시나 광덕산 정상보다는 더 볼거리가 있었다.


"야호!"

우리의 울림이 산 곳곳에 울려 퍼진다.
등산 후 나의 한 마디는 늘 같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길 잘했어!"

쓸쓸한 겨울 산행,
함께라서 더 걱정이 되었고
함께라서 더 힘이 나서 정상까지 갈 수 있었던 우리의 산행.

함께라서.




봄비네 인스타그램

봄비네 블로그

봄비네 유튜브


작가의 이전글 우리에겐 동네 뒷산, 세종 전월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