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남들 '싸이월드'에 푹 빠져 있을 때 나는 블로그로 넘어왔다. 그저 긴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싸이월드에도 일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사진첩에는 사진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썼다면 일기장에는 좀 더 긴 글을 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진첩이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포맷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일기장을 읽은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다. 영화 캐릭터로 설명하자면 내 글은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슬픔이 모드였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의 우울함도 더 크게 부풀려 글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머릿속에 떠도는 이야기를 손끝으로 내보내고 나면 속이 시원했다. 나는 그렇게 글을 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곤 나는.. 그 이야기를 잊었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으면 쓰고, 또 쓰고..
질릴 때까지 써냈으니.. 언젠가는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싸이월드에서 블로그로 넘어갔다.
우울함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찌 과시할 게 없어서 우울함을 과시할까.
그렇다고 관심을 받고 싶어서 쓰는 글도 아니었다.
내 일기장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괜찮니?"였기에오해할 수도 있다.
내가 관심받고 싶어서 저런다고. 반응이 없었다면 나도 조금은 서운했을 테니..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정말로 관심이 필요해서 쓴 글은 아니었다.
그저 쓰고 싶어서 쓴 글이었다.
하지만 좀 더 솔직해지려면, 좀 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려면좀 더 사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블로그'로 옮겨갔다.
그럼 일기장에 글을 쓰면 되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다.하지만 그건 좀 맛이 나지 않는다.
손 글씨도 좋아하고 편지도 좋아하지만, 그저 흘러가는 내 생각을 담기엔 속도가 나지 않는다.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와 함께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 이야기들은 손끝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동굴을 찾아내곤 한다.
그럼 비공개로 올리면 되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그것도 좀 맛이 나지 않았다. 우울함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왠지 '비공개'는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너무 모순일까? 암튼 나는 그랬다.
그런데 그 기능마저도 서서히 잃어갔다.
이번엔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넘어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블로그의 규모가 좀 커졌다.
하루에 몇 천명씩 들어오는 공간이 되었고, 구독자가 5000명을 넘어갔다.
그러는 사이 블로그의 본 기능도 잃어갔다.
번역을 하면서 남는 시간엔 블로그를 이용해 기자단 활동을 하고, 블로그를 이용해 소소하게 체험단 활동도 했다. 그리고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블로그를 이용했고, 포트폴리오도 블로그를 통해 쌓아 갔다.
글을 쓰긴 하지만, 사진 위주의 글이다 보니 글 쓰는 맛이 좀 떨어지기도 했다.
내내 글만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브런치라는 공간으로 넘어왔다.
(먼 훗날 브런치가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또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을 거라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브런치를 애용하고 있다.)
나는 늘 순간의 진심을 쓴다.
그러니깐 그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인 이야기다. 하지만 언젠간 또 동전 뒤집듯 쉽게 바뀔 수도 있고,혹은 먼 훗날까지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갈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렇게 순간의 진심을 와르르 쏟아낸다.
그렇게 쓴 저번 글이 어쩌다 보니 카카오 메인에 올라갔다.
이를 '당첨'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내 글의 가치를 인정받은 느낌이 드니깐.
다른 글 다 제쳐두고 그 글만 가치를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
(물론 다른 글이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다. )
그런데 그 이야기를 읽은 엄마의 반응은 내 생각과 좀 달랐다.
"잘 썼네."가 아니라 "요즘 우울하냐"는 말을 건네 왔다.
엄마가 읽은 내 글은 번역서 또는 (잡지사에 기고한) 여행기가 다였으니
나의 글 스타일을 몰랐을 것이다. 또는 엄마의 지나친 걱정이기도 하다.
남편 하나 믿고 타지로 이사와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생활하는 딸이, 게다가 회사도 다니지 않고 내내 집에서 작업하는 프리랜서 딸이 외롭지 않을까 걱정인 엄마에게 순간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그 글이 마음에 걸렸던 거다.
그 글을 읽은 남편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내 글이 그렇게 우울해 보였는가.
나도 모르는 '외로움'이 불쑥 튀어나왔던 건가.
어찌 되었든 나는 뜻하지 않게 "글밍아웃"을 하게 되었다.나는 이런 글을 꾸준히 써온 사람이라고.
나에게는 분홍색 일기장이 있다.
대부분 일기장의 색이 분홍색이었기에
그 일기장을 분홍색 일기장이라 부르겠다.
그 분홍색 일기장에는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써놓은 글만 존재한다.
그냥 하루 계획서 혹은 정리서 같은 느낌의 일기장이다.
몇 년을 썼지만, 늘 그랬다. 그 순간 나의 감정들은 '거짓'이 많았다. 나만 보는 일기장에도 나는 '거짓'을 좀 보탰다... 꼭 누군가가 언젠가는 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내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이유는 나는 글을 쓰는 속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분홍색 일기장에는 연필이나 볼펜으로 끄적인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속도가 느려지고,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미화하거나 거짓을 보태거나 무언가를 의식하게 된다. (물론 이건 나의 경우는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오히려 브런치에 쓰는 글은, 생각 없이 써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생각 없이 무심코 뱉은 단어와 문장과 글이 모여있다. 그 속에는 나도 모르는 진심이 담겨 있고, 감정이 담겨 있고, 생각이 담겨 있다. 의식 속에 숨어 있던 무의식이 쓰여있다.
글밍아웃을 하면서 나는 떳떳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편에게)
나는 이런 감정들을 가지고 있고,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저 그 순간의 감정을 써 내려갔을 뿐, 늘 우울한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글밍아웃을 했으니 나는 이전과 똑같이 순간의 진심을 써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다짐을 했다.
언젠가 내 가족을 포함해서 내 글을 읽은 독자가, 내 글을 읽고, 혹시 우울하냐고 묻기보다는... 그 글 속에서 반짝이는 가치를 먼저 더 발견할 수 있는 멋진 글을 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