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장례식장

당신의 포기를 삽니다

by 봄단풍


[Web발신][부고]

인재개발부 김학철 부장 빙모상

◆ 빈소: XX동 XX병원 장례식장 7호실

◆ 발인: 2018년 3월 28일(수) 오전 8시

◆ 연락처: 김학철 부장(01X-0000-000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직원으로서 평소 노동조합의 노고를 느끼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간혹이나마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경조사를 문자로 받을 때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다. 사실 경사든 조사든 받는 순간에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누구인지, 내가 가야할만한 친분의 사람인지, 날짜는 언제고 간다면 언제, 누구랑 같이 가야하나, 부의는 얼마나 해야 하나……. 대부분의 부서원들은 대충 알림을 확인하고 자기 일에 몰두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박 차장님 아는 분이세요?”

“아 왜, 나 전에 홍보팀 있을 때……. 같이 근무하고 그랬지. 오늘 회식은 못하겠다. 아마 본부장님도 가실 걸?”


문자를 받은 남 대리님은 슬쩍 박 차장님의 눈치를 살핀 뒤,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박 차장은 귀찮다는 듯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아씨, 오늘 간만에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라믄 나가리네.”


아쉬운 듯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박차장님의 얼굴에는 오히려 안도감이 깃들어있었다. 사실 박차장님은 평소에도 퇴근을 일찍 하는 편은 아니었다. 턱을 괴고 마우스 스크롤만 움직이면서,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냐고 여쭤 봐도 별다른 답 없이 앉아계시다가, 아홉시가 넘은 시간에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가 다반사였다. 일개 주임으로서 어찌 그 이유를 다 알겠냐만은, ‘상관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혼내는 상관을 둔 부하 직원의 입장으로서는 다소 답답할 따름이었다.


“우 주임?”

“네?”

“아니, 우 주임도 갈 거냐고.”

“아, 전…….”


간만에 일을 다 마치고 칼같이 퇴근하려고 했는데요. 나는 웅얼거리는 소리를 애써 누르며 다른 부서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남 대리님은 어느새 눈을 내리깔고 자기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빠른 태세전환은 필히 배워놔야겠다.


“우 주임도 잘 알지 않아? 인재개발부니까 처음 들어올 때 교육 받았을 거 아니야.”

“네, 그렇습니다.”


다만 그 연수를 받을 때 딱히 주고받은 인연이 없었을 뿐이었다. 인재개발부 부장으로 연수의 총괄을 담당한 분이긴 했지만, 교육을 비롯한 실무는 인재개발부 차장님과 대리님께서 주도를 했던 터라. 오십명 가량의 입사 동기 단체 채팅방도 오늘은 조용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건 엄연히 부고다. 각별히 친한 것도 아니고, 연락을 따로 받은 것도 아니면 찾아가는 것이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자리니까.


“우 주임, 잘 알아놔. 잘 몰라도 이럴 때 가서 인사드리고 하면 다 나중에 도움이 되는 거야. 회사 혼자 다니는 거 아니잖아. 이런 게 진짜 사회생활이라고.”


뿌듯하게 설명하는 그의 생각은 나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내 가장 가까운 가족의 장례식에 박차장이 나타나는 상상을 해봤다. 썩 좋은 기분이 들진 않았다. 아직 스물아홉의 내게 장례식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함께 추억하고 떠나보내는 곳이지 누군가를 만나서 인사하고 관계를 넓히는 친교의 장은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물론 내 생각을 이 사회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사는 것이지, 세상을 물바다로 만드는 건 선구자도 뭣도 아니고 그저 만용일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물고기다. 나도, 저토록 노력하는 차장도 결국 물고기일 따름이다. 진정 이 사회에 낚시꾼은 없다. 낚시꾼은 풍류를 즐기고, 애써 살아가는 물고기를 측은히 내려다보며 미끼를 드리우고. 가벼운 달콤함에 속아 넘어간 어린 물고기는 놔주고, 절실함에 미끼를 붙든 물고기는 매운탕의 재료로 만든다. 낚시꾼은 이미 사회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산 속 좋은 공기를 마시며 배고픔을 달랠 물고기들을 찾고 있을 따름이다. 잠시 물 위로 올라와 뻐끔거리는 물고기처럼,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차장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또 다시 문자 알림이 울렸다. 엄마였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저녁 같이 먹자고 요리하신단다. 오늘은 몇 시에 들어오니?』


멀뚱히 문자를 내려다보다가, 나는 핸드폰 알림을 꺼버렸다. 답 안하면 바쁜 줄 아시겠지, 뭐.


『반년 정도의 평판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사실 차장님의 물음보다, 그리고 엄마의 문자보다도 꿈결에 기억에 남은 그 말이 신경 쓰였다. 아직 정말로 평판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관계를 잘 다져놓는다면 나중에라도 그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모니터를 앞에 두고 입을 앙다물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나는 박차장님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장례식장으로 가고 있었다. 운전하는 박 차장은 혼잣말이 많았다.


“아휴, 환절기가 되니까 노인네들이 많이 가나 보네.”

“애들 눈치가 좀 보여야지. 가서 좀 눌러 있다가 나와야겠다.”

“이 차가 벌써 12만을 넘었네, 어휴. 바꿀 때가 됐나.”


이런 식으로, 딱히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말들이었다. 나는 아, 음, 정도의 감탄사나 추임새를 넣으며, 애써 시선만 오락가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대화가 오래 갈리 없었고, 박차장님도 결국 말을 멈추고 조용히 핸들을 돌리거나, 두드릴 뿐이었다.


“우 주임.”


그러기를 한참. 따뜻한 시트에 익숙해져 노곤한 잠이 쏟아지는 상태로 이삼십 분 정도를 버텼을 무렵, 평소와는 다른 낮게 깔린 목소리로 박차장이 말을 걸어왔다. 졸음과 싸우고 있던 터라 평소보다 괜히 대답에 더 힘이 들어갔다.


“예.”

“우주임은, 저……. 부모님 건강 하시지?”

“예? 예.”

“그래. 다행이네.”


그렇게 대화는 또 멈췄다. 나는 왜 그런 걸 물어봤을까, 골똘히 생각하며 앞만 보고 있는 박 차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또 다른 가족은? 없어?”

“아, 형이랑 할머니가 같이 삽니다.”

“할머니?”

“예.”


운전에 집중하던 박차장이 무슨 일인지 흘끗 쳐다봤다. 잠깐이었지만, 뭔가 묻고 싶은 것이 가득한 눈치였다.


“건강하셔?”

“네. 건강히 잘 계십니다.”

“그래.”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나는 졸음을 이겨내려 애쓰며 살며시 박 차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나이를 먹으면 다 그렇게 변하는 것인지, 아까 혼잣말을 할 때나 지금이나 박 차장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 헐렁한 안경, 얼굴 곳곳에 자글자글한 주름과 처진 눈매, 신기하게도 늘 깔끔하게 정리된 눈썹과 그 눈썹에도 섞여있는 하얀 새치. 이렇게나 자세히 살펴본 것은 박차장님에게 혼날 때 빼고는 없었다.


“속 썩이지 말고 잘 해드려.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내가 회사에서 뭘 어쨌는데…….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고, 그저 걱정하는 마음만 받기로 생각하며 겨우겨우 대답을 목 안 쪽에서 끄집어냈다. 예, 알겠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인 부모님 대신 나를 돌봐주신 할머니는 요즘 늘 통증을 호소하고 계신다. 무릎 관절, 소화불량, 두통 등등. 할머니는 늘 긍정적이었지만, 요즘은 소파에서는 허리를 못 떼고 텔레비전에서는 눈을 못 떼고 계셨다. 하지만 가족 중에 불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식사 때면 멀쩡히 일어나시기도 했고, 내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겠다는 말씀도 몇 번이고 하셨으니까. 세상 모든 일에 주기가 있듯이, 가족 모두 할머니의 건강도 곧 다시 회복되리라 믿고 있었다.


박 차장은 그 이후로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화 소재가 떨어졌을 때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화가 없는 조용한 순간을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있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침묵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회식 때는 불편했다. 대화를 하지 않으니 술을 빨리 먹게 되고, 그렇다고 집에 일찍 보내 주지도 않으니.


그렇게 십여 분 뒤 나와 박 차장은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새삼 아이를 봐야 한다며 일찍 퇴근한 남 대리님이 부러워졌다. 하릴 없이 걷는 사이 어느새 나는 국화꽃을 손에 들고 있었고, 곧 박 차장과 함께 절을 올리고 있었다 - ‘우 주임, 종교가 어찌 되었든 내가 절을 하는데 부하 직원이 서서 인사하면 그림이 뭐가 되겠어?’ - . 상주와의 인사도 금방이었다. 그가 워낙 인재개발부라는 요직에 있어서인지 조문은 쉴 새 없이 이어졌던 터라, 우리는 겨우 인사만 올린 후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식당은 손님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여덟 명 정도 둘러앉을 수 있는 긴 탁자 두개에 회사 임직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박차장님과 동년배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탁자 끄트머리에 자리 잡았다. 간혹 전체 회식 자리에서 봤던 상관들도 있었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다들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며 박차장님에게 조용히 술을 따라줄 뿐이었다.


습관처럼 빈 잔이 있는지 테이블을 눈으로 훑던 중, 생각지 못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데도 속눈썹이 보이는 듯 한 커다란 눈, 그 눈을 더 돋보이게 하는 하얀 피부. 나와 마주친 그 동그란 눈은 처음보다 훨씬 커지더니, 이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나도 재빨리 진 주임님만 보이도록 고개를 숙여보였다. 놀라웠고, 또 반가웠다. 그런데 내가 그 정도로 반가워할 사이가 되나, 지금?


“아 여긴 재무팀 우 주임입니다. 들어온 지 좀 됐는데……. 잘해요. 간혹 뭐 빠뜨리거나 하는 것만 아니면.”


울컥. 평소였으면 억지로 허허 웃으며 흘렸을 말에 괜히 짜증이 났다. 나는 굳은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올렸지만, 자꾸 몸이 더워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왠지 내 정수리를 바라보고 있을 맞은편의 진 주임님이 자꾸 생각났다.


문득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나를 데리고 다니며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던 박차장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점심시간마다 다른 부서 사람들과 밥을 먹고, 내가 보는 앞에서 내 흉을 보고, 그런 내게 힘내라며 건조한 격려를 건네는 시간이 입사 후 몇 달 동안 지속됐을 때에도 나는 꾹꾹 참았었는데. 늘 오래 견딘다고 노하우나 면역이 생기는 건 아닌가보다. 참을수록 해가 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톡 건드리면 터지는 일이 세상에는 더 많다.


다시 눈을 들어 박차장님의 이야기에 귀를 최대한 기울이려 했다. 이미 자기 세대의 동기들 이야기, 이 자리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과 떠난 사람. 실컷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술잔도 기울이고. 나는 귀를 열심히 기울였지만 따라갈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회식 때처럼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때로 진 주임님과 눈을 마주치려 노력했다. 말을 하는 주체가 바뀔 대마다, 주제가 바뀔 때마다, 혹은 누군가 목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거나 술잔을 다 같이 기울일 때마다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커다란 눈은 탁구공처럼 탁자를 옮겨 다니며 웃음을 던지기에 바빴고, 내게는 처음의 소심한 인사를 이어갈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김칫국이다. 그래, 겨우 지난 주말 처음 인사하고 사진을 찍었던 것뿐인데, 가까워졌을 리가 있나. 얼마나 대단한 인사를 바란다고 기대를 품고 있는 거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시선이 보이지 않았길, 혼자 애타는 모습이 비춰지지 않았길 기도하며 다시 박 차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 주임, 바쁜 일 있으면 먼저 들어가지. 나는 좀 더 있다 갈 테니까.”

“괜찮으시겠어요?”

“어. 저, 대리 불러서 가면 돼.”


사람은 때를 잘 가려야한다고 했다. 평소의 부서 분위기였다면 무조건 술잔을 붙들고 남아있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겉으로만 안절부절 못하는 티를 내며 주춤주춤 다리를 폈다. 이미 소주 한 병을 비운 박차장님은 가볍게 터는 손짓을 마지막으로 나를 보냈고, 나는 그 손짓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흘끗 진 주임님을 살폈지만,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들려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막 아홉시 반을 넘은 시간이었다. 시원했다. 억지로 부끄러움을 강요하고, 술로 털어 넘기는 분위기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넥타이를 푼 것 같은 개운함이 온 몸을 감쌌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계속 차가 들락거렸고, 거무튀튀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있었다. 누군가는 현금 인출기를 찾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부의 금액을 고민하며 속으로 돈을 세고 있겠지. 그들 중 누구는 돌려받을 금액을 생각하다가, 결국 그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재촉할 테고.


왜 이토록 오랫동안 슬퍼해야 할까, 왜 이토록 며칠 동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방문까지 받으면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걸까? 당연히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왜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용히 추억을 돌이키며 아름답게 보내드릴 수는 없는 걸까, 아는지 모르는지 애매한 사람들까지 초대해서 돈을 주고받고, 밥을 먹여야하고 종아리가 쑤시고 무릎이 뻐근할 때까지 인사를 주고받아야 할까…….


“수하 씨!”


누군가 오른팔을 확 잡아채는 덕에 사색에서 벗어났다. 깜짝 놀라 황급히 움츠러든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돌리자, 하얀 얼굴의 익숙한 미소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8. 포기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