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면 자연스레 시선은 창밖으로 향합니다.
잿빛 건물들과 시커먼 도로를 지나면
들판, 하늘, 나무들, 평소 볼 수 없던 새들과 숲까지.
스쳐지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담아두고싶은 순간들, 멈춰진 장면들은
내가 지나친 그 곳에 가서야 잠시 보일 듯 말 듯,
나란히 달린다 생각했던 모습도
내가 파묻혀있다 생각했던 그 풍경도
순식간에 작아져만 갑니다.
누가 기억할 수 있을까요, 내가 그 곳에 있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있어줄 사진이면 될까요,
순식간에 담아낸 크로키 한 장이면 족할까요.
귀에 여전한 옆사람의 코고는 소리, 아니면 객실의 향수 냄새
어쩌면, 그 때 반짝하고 떠올라 끄적인 몇 줄의 글.
글과 소리, 냄새와 기억, 그 모든 걸 다 품어봐도
점차 선명해지는 건 ‘나는 이제 그 곳에 없다’는 사실.
아름답고, 찬란했고, 가슴 한 켠에만 선명히 새겨져
표현할 수 없을만큼 마음 시리도록 만드는 그 모습들.
그래서 기차여행은 혼자 하면 재미가 없나봅니다.
내가 달려가는 길,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
마음 속에 켜켜이 쌓아 고이 뚜껑을 덮어 보관하고 싶은
그런 기억들을, 더 반짝반짝하게 해줄 사람.
더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좀 더 미리 봐둘걸 하는 후회와 미련도,
아이고 투덜거림섞인 수다와 목축일 음료 한 두잔으로
함께 넘겨줄 사람.
표를 끊어놓고도 내가 가끔 어디로 갈지 잊어버렸을 때
침착히 지갑 속 티켓 반 쪽을 꺼내 보여주는,
비 내리는 날 흐린 차창 밖 풍경에 우울할 때
김서린 창문에 소소한 낙서들을 그려줄 그런 사람.
마침내 종착역에, 질리도록 들었던 기차 로고송이 나오면
함께 텅 빈 객실안에서 괴성을 지르며 기지개를 켜고
고생했다며 서로 어깨를 주물러주고 토닥거려줄 그런 사람,
같이 앉은 열차 창문에 시선의 흔적이 덕지덕지 남아있어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