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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May 02. 2024

두 번째 첫 출근

A씨 이야기

A씨는 항상 본인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 평범한 학교, 남들 다 하는 군 생활과 평범한 성적, 평범한 회사. 다만 남들과 비슷한 평범함이라는 가치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큰 노력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인지, A씨가 몸소 체험하게 된 것은 그의 첫 직장에서였다. 수십 년 동안 가정을 지켜온 그의 부모님께 감사와 존경을 보내면서도, 하루하루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불건전한 해소 방법으로 망가지던 그가 아내의 권유에 곧바로 퇴사를 결심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 덕분에 아내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A씨였지만, 그의 어깨를 펴준 것도 역시 바로 그의 아

내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서장을 비롯한 팀원들과 인사를 나눈 A씨는 최대한 깍듯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마치 군대에서처럼, 딱 끊어지는 말투와 절도 있는 행동으로 자신이 이곳의 막내이며 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면접 때 입었던 정장을 흐트러지지 않게 수시로 다듬으면서도 기회만 되면 일어서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가 고생했던 첫 직장과는 사뭇 달랐다. 다들 편한 복장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업무를 수행했고, 행동거지 하나하나 여유가 묻어 나왔다. 업무 중에도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거나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전화벨이 울리는데도 느릿한 발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아무 때나 자신의 컵을 가득 채워와서 옆자리의 직원과 이야기하는 모습 등 A씨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입인 그에게 친절했다. 간단한 업무를 수행해도 잘했다며 칭찬해 주고, 점심 식사는 항상 그의 취향을 배려해 줬으며, 그의 퇴근 시간을 걱정해주기도 했다.     


“A씨, 먼저 들어가세요. 퇴근 시간 지났어요.”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없어요.”     


흰머리가 조금씩 보이는 A씨의 부서장은 자녀가 셋인 부장이었다. 깔끔한 업무처리로 좋은 평판이 자자했던 그녀는 항상 A씨보다도 훨씬 늦은 시간에 퇴근하곤 했다. 신입사원인 A씨가 먼저 퇴근하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단 한 마디로 그를 움직였다.     


“제가 A씨보다 돈을 더 많이 받잖아요, 그러니까 더 오래 일해야죠.”     


A씨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항상 군인처럼 빠릿빠릿해야 했으며, 조금이라도 늦게 입사한 사람이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해야 했다. 직급이 높아 돈을 더 받으니 더 일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듣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 봐, 좋은 곳이잖아.”     


A씨의 아내도 그의 직장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한 달이 지나도록 회식 한 번 하지 않고 일찍 퇴근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A씨는 점점 빠르게 회사에 적응했다. 집에서도 이전보다 더 밝은 모습을 보였고, 회사에서도 하나라도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여유가 생기니 오히려 일에도 욕심이 생겼고, 이전 직장보다 더 많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A씨는 습득이 빠르시네요.”

“확실히 직장 경력이 있으셔서 다르네.”

“부장님도 A씨가 되게 마음에 든다고 그러셨어요.”     


어쩌다가 지나치는 그의 선배들도 그런 말들을 건네며 A씨를 응원했다. 하루하루 기분이 좋아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마침내 A씨도 급여 명세서를 받는 날을 맞이했다.     


“백팔십만 원.”

“얼마?”     


아내는 당황한 기색으로 A씨를 마주 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씩 웃으면서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뭘. 예상했잖아. 연 이천만 원인데. 세금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감지덕지야.”

“너무 적긴 하다.”

“그래도 연차는 쌓이는 거잖아?”     


A씨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지난 한 달 동안 칭찬을 들으며 기분 좋게 일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철없게 느껴졌다. 마냥 편하고 행복한 직장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었다. 힘든 시간에는 그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법이고, 편하게 보낸 시간에는 그만큼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그런 간단한 이치를 그가 여태 몰랐을 리 없었다. 다만 회사의 이름값에 기대 모른 척하고 싶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괜찮아요. 이리 와 봐.”     


A씨의 아내는 남편의 머리를 잡고 이마를 맞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그녀는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걱정하지 마. 대신 당신은 정규직이잖아. 삼 년만 참으면 연봉도 오르고, 사고만 안 치면 잘리지도 않을 거야. 그러면 이득이잖아. 그렇지?”

“그렇지.”

“우리 잘 살아왔잖아. 돈 나가는 것만 좀 아끼면 돼. 알았지?”     


A씨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녀와 이마를 맞대는 순간은 그에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면서도 잠시나마 모든 걱정거리가 하찮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다시금 자괴감이 고개를 들곤 했다.      


“참 많이 미안해. 선배로서 지켜주지 못해서.”    

 

그로부터 며칠 뒤, 전 사원이 참석하는 행사와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 A씨는 다른 팀의 부서장을 만났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신입직원들이 모여 앉은자리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다른 직원들도 혀를 끌끌 차고, 누군가는 그분에게 휴지를 건네면서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A씨는 굳이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묵묵히 물로 입술을 축이기만 했다.      


사실 그 사람이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A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삼 년만 잘 버티고 ‘전환’ 후에 정년까지 일할 수만 있다면야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그 ‘전환’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웬만하면 다 시켜준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A씨는 그 부장의 눈물이 썩 달갑게 보이지는 않았다. 안쓰럽지도 않았다. 그저 얄팍한 동정일 것이다. 이십 년도 훌쩍 넘는 과거에 입사한 그 사람의 연봉도 지금의 이천만 원보다는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눈물은 얄팍한 동정이요, 미움받지 않기 위해 쥐어 짜내는 촌극일 것이다. A씨는 자꾸만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그의 동기 중 한 명이 퇴사했다. 다른 공기업으로 이직에 성공했다고 한다. 종종 마주칠 때마다 서로 잘 버텨보자던 동기였음에도 A씨는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도 그 동기처럼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는지 고민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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