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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May 04. 2024

노동조합 간담회

A씨 이야기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노동조합의 노고를 느끼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기껏해야 다른 직원들의 경조사 소식을 들을 때나 노동조합이 있었음을 기억해 내곤 했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달랐다. 회사에서 제시한 ‘전환’이라는 조건 때문에 노동조합도 바쁘게 활동했던 것이다. 바쁜 활동은 곧 직원들과의 잦은 교류를 뜻했다. 그래서 입사한 지 육 개월 만에 A씨는 입사 동기들과 함께 노동조합원 간담회에 참석하게 됐다. 무려 점심시간 한 시간을 활용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식사는 자리마다 놓아둔 도시락을 드시면 됩니다.”     


말이 도시락이지 한 사람당 만 원은 우습게 넘을 식사였다. A씨는 먹음직스럽게 놓인 도시락의 상자를 열면서 노동조합 위원장의 얼굴을 살폈다. 오늘 간담회를 진행하는 그는 연신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정장에 조끼, 넥타이까지 차려입은 위원장은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았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죠?”     


어느 정도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자 노동조합 위원장은 마침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현재 노동조합이 직원들을 위해 해온 일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회사의 복지 포인트 사용처를 몇 군데나 늘렸는지, 계약직원들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했는지, 특근 및 야근의 비중을 얼마나 줄였는지 등등. 회사에 갓 입사한 말단직원으로서는 느끼지 못할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A씨는 묵묵히 참고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이제……. 어디 보자. 다했나? 아, 전환. 전환 대상자들이 계시죠, 오늘?”     


A씨는 주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변했다고 느꼈다. 위원장이 무슨 말을 해도 목석같던 사람들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수백 명이 앉은 대형 강의실 같았던 그 공간은 이제 신호만 떨어지면 날 선 질문들이 던져질 청문회장으로 변해있었다.     


“일단은 저희도 계속 회사에 따지고 있습니다. 이, 초봉 이천만 원이 말이 되느냐, 우리 젊은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그래서 계속 얘기를 했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다 전환해주셔야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회사 사정이 썩 그리 좋지 않습니다. 지금 경제 상황도 그렇고, 매출이나 영업 이익도 생각보다…….”


그다음은 들으나 마나 한 말이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설명이 구구절절 이어졌고, 간담회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은 점점 매섭게 변해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심드렁한 눈으로 일회용 도시락 용기를 깨작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위원장의 설명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분명했던 것은 전반적으로 무던했던 분위기가 사람에 따라 극적으로 갈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전환 방식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지금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굉장히, 아주 공정한 방식을 채택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전환해야 하는데 전환 방식을 검토한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죠?”     


결국 참다못한 누군가가 위원장의 말 사이에 끼어들었다. 위원장은 당황하지 않고 허허, 웃음소리를 흘리며 여유 있게 대답했다.     


“방금 설명드렸잖습니까. 회사 사정상 전부 다는…….”

“분명히 뽑을 때는 다 전환해 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얼마나 전환이 되는 건데요?”     


한 번에 쏟아지는 질문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위원장은 그 와중에도 질문한 두 사람을 재빠르게 누군지 살핀 뒤 나중에 들려온 질문에 대해 대답했다.     


“일단 회사에서 얘기 중인 건 30% 정도라고 들었고요.”     


여기저기서 허, 참,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되냐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소심한 A씨는 웃음소리를 흘리지도, 호통을 치지도 못하고 그저 낮고 긴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30%라니. 회사에 들어오는 것도 수백 대 일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는데, 들어오고 나서도 또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겨우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원장님, 그게 말이 됩니까? 저희는 전환을 보장받고 입사했는데요.”

“지금 월급도 이백만 원이 안 돼요. 이렇게 삼 년을 다니는 것도 모자라 또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래서 30%는 그럼 무엇을 기준으로 가리는 건데요?”

“아니, 막말로 전환이 안 된 70%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환이 되고도 문제잖아요. 전환되면 처우가 어떻게 바뀌는 건데요? 저희 월급 어떻게 되는 거냐고요!”     


쏟아지는 질문의 숫자는 금세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질문과 질문을 가장한 아우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위원장은 연신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사람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시킨 그는 역시나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자, 여러분이 뭘 걱정하는지는 저도 압니다. 저도 여러분이랑 같은 직원인데요. 그럼요. 말이 안 됩니다. 당연히 알고 있지요. 다만 협상이라는 것이 어느 한 사람의 입장만 생각할 수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뉴스 보시잖아요, 요즘 경제가 어떤지. 회사도 얼마나 다 전환시켜드리고 싶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걱정하는 것, 뭐, 전환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또, 뭐야. 그……. 전환이 안 되면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들도 지금 회사에서 다 신경을 써서 검토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도 다 떠올리는 걱정을 회사에서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말은 유려하게 흘러나왔으나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눈빛이 위원장에게 쏟아졌고, 심지어 팔짱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도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위원장은 끝끝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여러분, 제 동기 중에 지금 부장이나 국장을 단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뭡니까? 저 아시는 분. 저, 차장이잖아요, 그렇죠? 모두가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겁니다. 어느 정도 능력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어요. 경쟁사회잖아요. 경쟁사회. 저라고 부장 달고 있는 동기들 보면 배 안 아프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저대로 열심히 살고, 그런 동기들 만나면 밥은 대신 그 동기가 사고 그런 겁니다. 경쟁사회입니다, 대한민국은.”     


위원장은 그 말이 대단한 무기라도 되는 양 웃으면서 마이크를 내려놨다. 그리고 어디 질문을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좌중을 둘러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분위기는 위원장의 마지막 말에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들,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는 사람들, 그리고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뚫어버릴 것 같은 눈으로 위원장을 쳐다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 A씨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위원장이 손을 까딱하며 질문을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A씨는 옆에서 건네주는 마이크를 받고 일어났다.     


“저, 위원장님. 경쟁사회에서 침해될 수 있는 근로자의 권익을 지키라고 존재하는 것이 노동조합 아닌가요? 경쟁사회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위원장님께서 할만한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A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옳지 않다. 회사의 방식도 옳지 않았지만, 거기에 대고 회사의 사정을 고려해 달라는 노동조합 위원장의 태도도 옳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훔치면 그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상황을 고려한 너그러운 판결을 검토할 수 있을지언정, 돈을 훔쳤다는 행위 자체가 범법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대해 자꾸만 핑계와 변명을 덧붙이려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낀 A씨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다. 심지어 회사의 변명을 노동조합의 대표가 하는 것은 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허, 허허허. 허허허.”     


노동조합 위원장은 다급하게 마이크를 켜면서 단상 앞으로 나섰다.     


“아 물론, 저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입직원 여러분이, 또 입사한 지 지금 일 년? 이 년? 되신 분들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저희도 인사팀 만날 때마다 얘기합니다. 얘기하고 또 얘기합니다. 말이 되느냐, 이것이. 우리 노동조합은, 모두가 전환되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 당연히 이것이 저희 원칙이죠. 그럼요. 다만, 다만. 다만, 지금 회사 상황이 썩 좋지 않으니, 우리도 어느 정도 이해하려는 마음은 필요하다, 그런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아예 손 놓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음에도 큰 실속 없는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그마저도 점심시간이 거의 끝났다는 핑계로 금세 마무리됐다. A씨는 더욱 복잡해진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사무실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걸 못 참고 마이크를 잡았어?”

“미안. 설마 그걸 기록해 뒀다가 인사에 나쁘게 쓰지는 않겠지?”

“설마 그러겠어.”     


A씨와 비슷한 시간에 퇴근한 그의 아내는 밥을 먹으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어요. 나 같아도 못 참았을 것 같네.”

“당신 말 듣고 보니까 참을 걸 그랬어. 조용히 있을걸.”

“아니야, 누군가는 말해야지. 그래도 다음부터는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지켜보다가 말해요.”     


아내는 웃었지만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근거로 A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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