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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May 07. 2024

제안

A씨 이야기

그로부터 또 육 개월이 흘렀다. 해가 바뀌고 나니 A씨의 월급에도 변화가 있었다. 연차가 오르면서 한 달에 받는 금액이 이백만 원을 간신히 넘은 것이다. 그의 아내는 이제 시작이라면서 A씨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A씨의 아내가 임신한 것이다. 월급도 오르고 아이도 생겼으니 축하할 일만 남은 것인데도 그의 마음은 오히려 나날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겨우 이백만 원 언저리의 월급은 가정을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월급이었다. 결국 A씨의 삶은 ‘전환’이라는 것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이 회사에도 변화가 있었다. 바로 기존 노동조합 위원장의 임기가 끝난 것이다. 새로운 위원장을 뽑는 투표가 진행됐고, 후보는 간담회를 진행했던 기존의 위원장과 새롭게 후보로 나선 사람까지 두 사람이었다. 사실 지난 간담회를 겪은 A씨가 보기에 투표 결과는 보나 마나 한 것이었다. 결국 득표 수에서 세 배 이상의 차이를 내면서 새로운 노동조합 위원장이 선출됐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근 삼 년 내에 입사한 직원 여러분들의 처우 개선입니다. 이 전환, 전환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낼 것인지, 얼마나 해낼 것인지, 절대로 직원 여러분께서 손해 보지 않도록 회사와 협상해 내겠습니다.”


새롭게 선출된 위원장은 패기가 넘쳤다.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파업을 강행해서라도 회사 측의 답변을 받아내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물론 A씨는 그 말을 바로 신뢰하지 않았다. 다만 표면적으로라도 그렇게 싸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사람이, 경쟁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변명하는 사람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어볼 뿐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노동조합 위원장이 선출된 며칠 후, A씨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사내 메신저로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바로 새로운 노동조합의 부위원장이라는 사람이었다. A씨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한 번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겠다는 말에, 입사한 지 불과 일 년밖에 되지 않은 A씨는 먼저 부서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저도 노조는 가입했어요. A씨도 스스로 권익을 쟁취할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아요.”     


부서장은 너그럽게 웃으면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A씨에게 회의실을 허락했다.      


“A씨를 저희 노동조합 실행위원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날 오후 새로운 노동조합에서 찾아온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그런 말을 꺼냈다. 연차도 꽤 있어 보이는 그들은 벌써 노동조합의 이름이 새겨진 방풍 재킷을 맞춰 입고 있었다. 그들은 A씨가 지난 노동조합 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을 기억한다고 했다. 또, A씨는 ‘전환’이라는 현실에 매인 새로운 직원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보다 현실적으로 잘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하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A씨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을 수 없었다. 일단 사무실까지 찾아온 사람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노동조합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자는 말에 섣불리 손을 덥석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노동조합 실행위원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기도 했거니와, 업무량이 늘어나서 임신한 아내를 돌볼 수 없게 되는 것도 두려웠던 것이다. 물론 가장 두려운 것은 회사 측의 시선이었다.   

  

“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     


그날 저녁, 밥을 먹던 아내는 젓가락도 내려놓고 A씨를 다그쳤다.     


“큰일 나. 간담회에서 한마디 쏘아붙인 것과 회사랑 싸우는 것은 완전 다르잖아. 그리고 입사 일 년 차인 사람한테 같이 하자고 하는 것도 수상해. 회사랑 협상하려면 더 경력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니야? 설령 뭘 하더라도 당신한테는 잡다한 일만 시키고 자기들은 편하게 놀 것 같아.”

“그렇겠지. 그리고 내가 당신을 두고 어떻게 노동조합까지 하겠어.”

“이미 거절했구나? 잘했어요.”     


A씨는 다음날 노동조합 부위원장에게 사내 메신저로 거절하는 회신을 보냈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직장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것만이 그와 그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길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새로운 노동조합의 실행위원 명단이 발표됐다. 명단에는 A씨의 입사 동기 중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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