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권 단편소설
“더 마실래?”
빨간 라벨이 붙은 초록색 병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예뻤다. 내가 벌써 취했나 싶었지만 이제 고작 세 모금을 마셨을 뿐이고, 튀김우동도 간신히 두 젓가락 집어넣었을 뿐이었다. 뜨거워서.
“아냐. 천천히 마실게.”
초록색 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탁자 위에 뚜껑 없이 서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나는 모자를 씌워주듯 뚜껑을 두 바퀴정도 감아줬다.
“야, 왜 닫아?”
“아 미안, 추워보여서.”
갑자기 새침해진 목소리로 병은 말했다.
“다 마시지도 않고 뚜껑을 닫는 건 굉장한 실례야.”
“그랬구나. 미안해.”
요즘엔 사과할 일이 참 많구나. 나는 세 번째 튀김우동 젓가락을 들고 후후 불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날이 쌀쌀했다. 일할 때는 그렇게 덥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던 정장이, 겨울바람 앞에서는 잠옷마냥 얇게만 느껴졌다. 실밥이 거의 풀려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코트의 첫 번째 단추는 왠지 모르게 쿡쿡거리며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이 추위에, 이 밤에, 편의점 밖에서 혼자라니.
“다 마시긴 할 거지?”
갑자기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몰라.”
“후우.”
이번에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예뻐서 그런지 한숨소리도 참 곱다고 느껴졌다. 병이라 공명이 잘 되는 모양이다.
“종종 있어. 너 같은 사람.”
“나?”
“그래. 얼굴 잔뜩 구기고 한밤중에 와서 친구들을 데려가지. 포부 좋게 우리 빨간 라벨들을 데리고 가서 시원하게 들이키다가, 얼굴 더 구기고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사람들. 중간에 포기할 것 같으면 파랑이나 분홍이를 데려가면 됐잖아?”
마음이 아팠다. 빨간 라벨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포부, 포기, 그리고 몇 가지 단어들과 그 흐름이 마음을 콕콕 쑤셔왔다.
“시끄러. 너 솔직히 너무 세.”
“그럼 다른 애들을 마시면……. 야, 뚜껑 닫지 말라니까?”
무슨 거창한 포부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했던 것은, 소박하다면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었다. 나는 뚜껑 아래에서 울리는 초록빛깔 목소리를 경청하는 척 멍하니 병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밤하늘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