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주 자전거 길을 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문경에서 시작하여 서울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다. 문경새재에 들어서니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산을 오른다. 짐이 많아 오르막길에 지레 겁을 먹었는데 오르다 보니 생각보다 할 만했다. 하나 둘 하나 둘. 박자를 맞추어 페달을 밟았다. 점점 높아질수록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정상에 가까워진다. 정상에 다다르면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그런 것들이 오르막길을 오르는 힘이 되어주었다. 오르막에서는 최대한 살살 타는 편이다. 기어를 이너로 바꾸고 천천히 바퀴를 굴리다 보면 언젠가는 오르막길이 끝나니까. 백두대간 이화령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보였다. 자전거에서 내려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물이 달다. 이 물을 마시려고 오르막을 오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휴게소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자전거로 온 것인지, 어디서 왔는지, 그들은 이것저것 물었다. 질문과 대답이 한동안 오갔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잠깐의 대화가 반가웠다. 응원을 받는 것은 덤이다.
이제 내리막길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탈 차례였다.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아서인지 평일이어서인지, 자전거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작년에도 이맘 때쯤 휑한 섬진강 길을 달렸다. 어쩌다 보니 늘 나뭇가지가 앙상할 때 여행을 떠났다. 저기 꽃이 핀다면, 잎이 달린다면 얼마나 예쁠까. 꽃과 푸른 잎으로 가득한 가로수길을 달리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아쉽지만은 않다. 봄이 오기 전의 고요하고 쓸쓸한 풍경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국토종주 길은 표지판과 바닥 표시선이 꼼꼼히 잘 되어 있었다. 길 자체도 잘 닦여 있는 편이었다. 중간중간 차도로 나와 갓길을 타야 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바닥에 자전거길 표시가 되어 있었다. 차도 옆 갓길을 타다 화살표를 따라 다시 넓은 자전거길로 진입할 때의 기분은 단연 최고였다. 그 넓은 길을 혼자 달리는 것이 적적하면서도 좋았다.
해 뜨면 라이딩 해 지면 휴식. 간단한 것 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미 해가 뜬 지 오래였다. 깨어난 뒤에도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거린 뒤에야 나갈 채비를 한다. 일정이 조금씩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틑 날은 아예 오후에 출발하는 바람에 계획보다 30km 정도를 덜 탄 상태였다. 다행히 마지막 날 라이딩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부지런히 타면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날 아침. 어서 일어나야 해, 머리 속에서 재촉하는데도 몸은 여전히 굼떴다. 결국 오전 11시가 넘어 출발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식사도 거르고 안장 위에 올라탔다. 아침 먹을 자격도 없어, 스스로에게 실망한 나는 입을 삐쭉 내밀고 중얼거렸다. 이래서 타이완 제대로 돌 수 있겠어? 왜 이렇게 늑장이야? 투덜투덜 자전거가 굴러갔다. 평소엔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주말에도 새벽 6시가 되면 일어나곤 했다. 그토록 꿈꿨던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는데 이게 뭐람. 나는 내가 게을러졌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알지 못했다. 내 몸이 힘들었다는 것을. 하루 일곱 시간, 여덟 시간을 자전거 위에서 보내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컨디션 조절을 잘 하고 있으니까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버거웠던 것이다. 10km, 20km, 달리다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늦었지만 길가에 식당을 찾아 밥도 챙겨 먹었다. 오후가 되니 햇살도 더욱 밝고 따사로워졌다. 그래, 이제 막 시작한 여행이 쉽진 않을 거야. 이 정도 하고 있는 것도 잘하고 있는 거야. 괜찮아. 잘하고 있어. 기분이 한결 좋아진 나는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동안 숱하게 자기 자신과 다투고 화해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어렴풋이 스쳐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