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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고 해줘, 나 말고 자전거

by 사색의 시간

딩동.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내 키만 한 택배 상자가 서 있었다. 자전거였다. 바구니 달린 미니벨로와 로드 자전거를 가지고 있지만 여행은 투어링 자전거로 가야 제 맛이다. 미니벨로는 바퀴가 작아 체력 소모가 크고, 로드 자전거는 카본 프레임이라 짐을 달 만한 구멍도 없고 짐을 단다고 해도 파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거 직접 조립할 거니?

“응!”

프레임, 앞바퀴, 뒷바퀴, 핸들, 안장. 상자 속에서 하나씩 꺼내 거실 바닥에 늘어놓았다. 대답을 했지만 자전거를 조립해 본 적은 없었다. 익히 알고 있는 자전거 모양이 되도록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프레임을 거꾸로 세워놓고 포크 사이로 앞바퀴를 넣었다. 핸들 자리에 핸들을, 안장 자리에 안장을 넣어본다. 영 어색하다. 내가 알던 자전거 모양이 아니다. 브레이크를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는 알 수조차 없다. 삼십 분 넘게 진도가 안 나갔다. 어서 타보고 싶은데. 이대로라면 조립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페달도 못 달고 앞바퀴만 꽂은 자전거를 끌고 동네 자전거 방으로 갔다. 약은 약사에게 자전거는 미케닉에게. 그 미케닉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의, 눈동자가 유난히 밝은 갈색인 남자였다. 종종 정비를 받으러 가곤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전거를 전부 알고 있었다. 자전거 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새 자전거를 타 볼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만지는 그의 손길을 관찰하고 있었다. 뒷 브레이크를 달 차례였다.

-얼마짜리 예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얼마인지 말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겠다. 그러기가 싫다. 자전거는 가격으로 판단하는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속내를 내보이면 유별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어물어물 대충 가격을 말했다.

-로드 타다가 이걸 타면 구름성이 안 좋게 느껴지실 텐데요.

빠르게 달리려는 것이 아니라, 이 자전거로는 여행을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걸로 대만에 간다고요? 우려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그런 목소리에 쉽게 주눅이 들었다. 세팅을 마친 그가 여행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해주긴 했지만 이미 풀이 죽어버렸다. 안장에 앉아보았다. 첫 라이딩을 이렇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페달이 무거웠다. 사거리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 자전거 도로에 진입했다. 공기 속에 겨울과 봄이 함께 들어있었다.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는 동안, 기분도 자전거도 조금 가벼워졌다. 선바위에 도착해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익숙한 형체가 자전거에서 내린다. H였다.

“이게 제 새 자전거예요!”

-예쁘네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대뜸 자전거 자랑부터 했다. H는 유니스트에 갈 거라고 했다. 선바위까지만 타고 집에 갈 생각이었지만,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같이 유니스트에 가기로 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자전거 위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유니스트 가는 길은 수확을 마친 텅 빈 논 뿐이었지만, 그 길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유니스트에 가서도 자전거를 세워 두고 예쁘지 않냐고 감탄하는 내 곁에서 H는 예뻐요,라고 장단을 맞춰주었다. 민트라기엔 연둣빛이 도는 그레이 그린 색에, 너무 스포티하지도 아주 클래식하지도 않은 적절한 디자인. 자전거를 타는 것은 자전거에 애정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 세상을 달리기 시작하는 자전거는 응당 예쁘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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