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이를 만난 것은 쓰차오 홍수림 그린터널 매표소였다. 나는 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우거진 맹그로브 나무들을 구경할 생각으로, 50분 코스와 1시간 30분 코스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타이완의 작은 아마존으로 불린다고는 하지만, 1시간 30분이나 나무를 구경하면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아니면 1시간 30분이나 투자할 만한 뭔가가 있는 것일까. 혼자 머리를 굴려봤자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코스 샀어요?”
-50분 코스요. 50분이면 충분해요.
“타이난 사람이에요?”
-네.
그가 란이였다. 훤칠한 키에 꼬불꼬불한 머리가 퍽 귀여웠다. 그의 대답을 듣고 50분 코스 1장을 샀다. 배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그와 더 얘기할 시간이 생겼다. 그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고, 간만의 휴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곧 배가 출발했다. 짙은 녹음과 그곳에 서식하는 작은 생물들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나 란이의 말대로 50분이면 충분한 것 같았다. 배에서 내린 란이와 친구들은 내게 어딜 가보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타이난에서 잠시 쉬고 있어서 별다른 일정은 없다고 했다.
-그럼 같이 일출 보러 갈래요? 우리 내일 얼랴오에 갈 거거든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메신저를 교환하고 다음 날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새벽 네 시. 전날 보았던 귀여운 친구들이 모두 오토바이 헬멧을 쓴 라이더로 바뀌어 있었다. 새벽인데도 공기가 차갑지 않았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도 오랜만인 데다가 뜻밖의 여행, 그것도 오토바이 여행에 동참하게 되어 한껏 들떴다.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얼랴오에 도착한다고 했다. 나는 헬멧을 받아 란이 오토바이 뒤에 앉았다.
-오토바이 탈 수 있어요?
“아뇨. 못 타요”
-왜요?
그러게요. 왜 못 탈까요.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 없었는데 여기 오니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다. 내가 만약 오토바이를 탔다면, 오토바이로 여행을 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자전거로 와도 이렇게 친구를 만나 오토바이 여행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보이는 것 없이 깜깜한 길을 내달리는데, 그게 눈물 나게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달리면서 대화도 할 수 있다니. 처음 달려보는 길 위에서 그리웠던 것을 찾은 듯한 충만감에 차올랐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얼랴오에 도착했다. 하늘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조용히 서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서 있으니 마치 오래된 친구 같았다. 그들은 흔쾌히 나를 이 여행에 초대해줬고, 특별히 불편해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나온다. 나온다! 해의 끄트머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나온다. 나온다! 해를 보러 온 사람이 우리 말고도 꽤 있었다. 알고 보니 얼랴오는 일출 명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타이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하루 이상 머무른 건 타이난이 처음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그간 이동하느라 하루씩 밖에 머물지 못했던 도시들에게 아쉬움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