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달려도 식당이 나오지 않는다. 세븐 일레븐도 보이지 않는다. 저 앞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우루루 휴식을 취하고 있길래 물어보았다. 주위에 밥 먹을 곳 없어요? 그들은 이방인을 향하여 히죽히죽 웃으며 이걸 어쩌나 이 주위엔 아무것도 없는데! 하고 외쳤다. 안내소 직원이 그렇게 당부했건만, 지나친 친절과 걱정이라 생각하고 그의 말을 간과했다. 일정 거리마다 꼬박꼬박 세븐일레븐이 나타나 주었기 때문에 설마, 다른 건 없어도 세븐일레븐은 있겠지. 하고 방심한 것이다. 자전거 무리에게 재차 확인한 결과 직원의 당부와 같이, 수리까지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나중에서야 들은 것이지만 나처럼 비상식량이라곤 조금도 챙기지 않은 채 자전거 여행을 하는 무모한 여행자는 잘 없다고 한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항상 가방 안에 두 끼 정도의 식량을 챙겨 다니는 여행자도 있었다. 머리로만 걱정 투성이었지 정작 하는 행동은 천하태평이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수리까지 가면 되지 뭐. 쭉 뻗은 도로뿐인 풍경 속을 한참이나 달렸다. 이토록 평지인 땅은 처음 봤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산길을 탔고, 평지를 달리더라도 시야에 항상 산이 있었다. 타이완의 서부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산이라곤 없었다.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좌우 앞뒤 시야에 들어오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스팔트 도로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땅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꼭 미국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사막 같았다. 사막은 아니다, 모래도 아니고 아스팔트 길도 있으니. 다만 아주 넓고, 끝이 안 보이고, 아무것도 없을 뿐이다. 미국 같다고 느낀 건 이국적이라는 의미였을 거다. 달릴수록 조금씩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뭔가 툭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말을 탄 말갈족이라던가, 타이완에 서식 중인 사자라던가, 벌거벗은 도깨비...... 그런 것들이 행여라도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50분 라이딩 10분 휴식이 이상적인 일정이라지만 도무지 이 벌판에 내려서 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뭐라도 나오길 빌며 달렸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이따금 표지판이 나타나는데, 길은 여전히 황무지일 뿐이었다. 턱없이 넓었다. 좁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맞은편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보였다. 머리가 분주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람이다. 반갑긴 한데, 저 할아버지는 이 아무것도 없는 길에 왜 있는 거지. 혹시 여기가 비밀 조직원만 다니는 통로인데 잘못 들어온 거면 어쩌지. 할아버지도 내가 그 길에 왜 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어쩌다 여길 타고 있누. 할아버지가 물었다. 아, 타이난 가는 길이에요. 할아버지는 낮고 느리게 답했다. 계속 쭉 가.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언제 마을이 나오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할아버지를 지나쳐 달렸다.
다시 황무지. 사람이 있는 쪽이 무서울까 없는 쪽이 무서울까 궁리하다 보니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 멀리 밭 같은 것이 보였다. 인류가 농경사회를 이루며 살았다는 것이 그만큼 반가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뭔가 울컥하고 북받치는 것이 핸들을 더 꼭 쥐게 했다. 밭을 한참 지나치다 보니 이번엔 글자도 보였다. 드디어 문명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딸기. 그곳에는 딸기라고 적혀있었다. 동시에 새콤달콤한 딸기향이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딸기라는 글자가 있고 딸기향이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딸기 한 상자 여기서 먹을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는 손수 딸기를 씻어주셨다. 피곤한 몸을 천막 아래 부렸다. 딸기 한 알을 입에 넣었다. 향과 맛과 육즙이 입 안으로 퍼지면서 톡톡 터졌다. 힘이 돌았다.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한국에서? 여자 혼자? 자전거 여행 중이라고? 사람들은 이 세 가지에 늘 놀라워했다. 그게 뭐 대수인가.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온 나지만, 황무지의 기억만큼은 강렬했다. 한국에서 혼자 와서 황무지를 자전거로 여행하다니. 그건 놀랄 법도 하다. 으으. 나는 도리질을 치며 딸기로 황무지의 기억을 씻어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