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이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 라이딩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었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햇살도 한층 따사로웠다. 좋은 날씨가 아깝긴 했지만, 나는 이쯤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마침 도착한 곳이 타이난이었다. 타이난은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한국의 경주처럼 유적지가 많고 타이완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들었다. 이틀 정도 타이난에 머무르며 천천히 둘러볼 생각이었다.
자전거와 짐을 풀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습관처럼 야시장을 가려는 길이었다. 도착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입에는 타이완 음식이 전혀 맞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나는 중국 음식을 좋아했고, 많은 한국인들이 싫어한다는 ‘시앙차이’도 더 달라고 해서 먹을 정도였다. 타이완 음식도 무리 없이 맞을 거라 생각했는데, 타이완 음식은 중국 음식과는 또 다른 풍미가 있었다. 그 풍미를 견디지 못하는 나로서는 야시장에 가봐도 딱히 먹을 게 없었다. 그런데도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꼭 그곳의 야시장을 한 번 가보고 싶어 진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보러 가는 것이기도 하다. 혹시나 먹을 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걸어가기엔 너무 멀어요. 길을 물었더니 여자가 말했다. 근처에 만두집이 있으니 일단 거기로 가요. 여자는 나를 다른 방향으로 데려갔다. 그녀의 이름은 아메이. 이십 대 중반에 작고 가녀린 몸집을 가진 귀여운 여자였다. 우리는 만두집에 앉아 생강이 든 만두를 베어 먹었다. 조그만 만두 속에도 타이완 특유의 풍미가 가득했다.
-한국에서 왔다고요. 여행은 재밌어요?
“네. 사람들이 무척 친절해요.”
-타이난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모레 오전에 떠나려고요.”
-음. 그럼, 내일 저녁에 같이 야시장 갈래요? 내 오토바이 있으니까 같이 타고 가요.
다음날 저녁, 호텔 입구에 오토바이를 탄 아메이가 있었다. 와. 멋있다고 생각했다. 아메이는 스누피가 그려진 헬맷을 내밀었다. 이거 쓰고 뒤에 타요. 20분 정도 걸릴 거예요. 나는 아메이 뒤에 올라탔다. 평소에 오토바이를 타는 거냐고 물으니, 타이완에서는 18세가 되면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아메이의 운전 솜씨는 굉장히 터프했다. 속도를 내고 커브를 돌 때마다 그녀의 가녀린 몸에 꼭 붙어 의지해야 했다. 야시장 입구에 거대한 오토바이 주차장이 있어, 그곳에 주차를 하고 야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나 사실 타이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요. 통 먹지를 못하고 있어요.”
-맨날 자전거 타는데 제대로 못 먹으면 힘들어서 어떡해요.
“네, 그래서 힘든 것 같아요. 맛있는 음식 좀 알려주세요.”
무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아메이는 나를 취두부 파는 곳으로 데려갔다. 취두부란 두부를 소금에 절여 오랫동안 삭힌 요리로 일명 썩은두부, 고약한 냄새로 유명했다. 맙소사. 잠깐만. 거부할 틈도 없이 취두부 향이 코 깊숙이 찔러들어왔다. 입맛이 없을 땐 취두부를 먹어봐요. 아메이는 생글 웃어 보였다. 그래. 아메이에겐 취두부가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입맛을 이해하려 애쓰며 취두부를 먹기 시작했다. 큼직하게 썬 취두부가 네 조각 나왔으니 사이좋게 두 조각씩 먹자고 하는 것을 한사코 한 조각만 먹겠다고 했다. 취두부를 먹고 나서 우리는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땅콩 아이스크림도 먹고 콩고물을 묻힌 떡도 먹었다. 오랜만에 실컷 수다도 떨었다. 즐거웠던 그 기억은, 강렬한 취두부 향기에 둘러싸여 있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