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뚜르 드 타이완이 눈앞에

by 사색의 시간

르웨탄은 둘레가 30km 남짓한 호수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르웨탄에 비치는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관광안내소도 커다랗게 잘 갖춰져 있었다. 타이난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을 묻고 나오려는데 안내소 직원이 나를 멈춰 세웠다.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어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먹으려고 가져온 간식이었다. 몇 번이나 괜찮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손에 쥐어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먹을 것을 종종 얻게 된다. 배가 고파 보이나 보다. 사실이긴 하다.

- 30분 정도 기다리면 나 점심시간이거든. 너랑 같이 점심 먹고 싶은데, 기다리긴 좀 그렇지? 어서 가봐야 되지?

제이 덕분에 시간을 아끼긴 했지만, 앞으로 타야 할 길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지체할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 이제 수리까지는 밥 먹을 곳이 없을 거야. 르웨탄 근처에서 꼭 점심을 챙겨 먹도록 해. 아, 그리고 운이 좋으면 외국 사이클 선수들을 볼 수 있을 거야. 오늘 여기서 뚜르 드 타이완 하는 날이거든.


뚜르 드 tour de 라면 1930년부터 열린 뚜르 드 프랑스가 시초다.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의 도로를 일주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대회이다. 타이완을 일주하는 뚜르 드 타이완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직원 말대로 여기저기 행사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다운힐 중간에 경찰 한 명이 자전거를 멈추라고 손짓했다. 곧 뚜르 드 타이완 선수들이 이 구간을 지나갈 예정이니 그때까지 잠시 여기서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 구간에 멈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 인근 동네 주민으로 추정되는 아주머니,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점점 모였다. 모인 사람들은 곧 선수들을 본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길은 숨 죽은 듯 조용해졌고, 곧 선수들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나까지 심장이 뛰었다. 저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지붕 위에 자전거를 달고 등장했다. 1등 선수의 서포트 카인 모양이다. 뚜르 드 프랑스, 지로 디 이탈리아 같은 경기에서 본 적이 있었다. 선수들이 오나 봐요! 우리는 잔뜩 들떠서 발을 굴렀다. 경기 안내를 위해 봉을 흔들고 있는 경찰도 재밌다는 듯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1등 2등 선수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연이어 선두 그룹이 순식간에 몰려와 저편으로 사라졌다. 선두 그룹을 뒤따라 몇 백 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페달을 밟으며 업힐을 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화면으로만 봤던 사이클 대회를 눈앞에서 보다니. 그 치열한 열기와 분투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이제 끝이에요, 내려가도 좋아요. 경찰이 통행금지를 해제한 뒤로도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감상을 나누느라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말 멋있네요, 그렇죠? 그들이 무사히 레이스를 마무리하길 빌며, 한참 뒤에야 하나 둘 산길을 내려갔다.


자전거 경기를 눈앞에서 보았다는 것은 자전거 여행 중인 나에게 각별한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경치를 구경하며 느림보 모드로 달리고 있었는데, 괜히 열심히 타고 싶어 졌다. 페달이 빨라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속도감이었다. 금방 다리가 무거워지는 바람에 다시 느림보 모드로 돌아와야 했지만. 나 뚜르 드 타이완 실제로 봤어! 위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전거 경기를 봤다는 자랑은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만 먹히는 법이었다.

keyword
이전 08화황무지와 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