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기
오늘도 늦잠을 잤다. 하지만 며칠 전처럼 우울해하거나 자책하지 않았다. 저녁에 잘 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오후엔 김치님을 만났다. 호주에 있을 때부터 한국에 가면 한 번 뵈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치님 출판 기념회 때 잠시 얼굴만 뵙고 이제야 만남을 가졌다. 알고 지낸 세월이 꽤 되는데 단둘이 독대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날씨는 여전히 조금 더웠지만 후암동을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 정말 그냥 한 번 뵙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났는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책과 글로 주제가 흘러갔다. 책을 만들고 싶어요? 라는 물음에 네! 라고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언젠가는' 내겠지요. 하는 게 나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점점 사실 내가 그걸 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 오기로 결정한 것도 책을 만들고 싶어서 였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제야 떠올랐다.
내가 도와주고 싶어요. 김치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고 감동받았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먼저 도와주겠다는 말을 꺼내는 게 쉬운 일인가? 그런 위치가 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막연히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말을 꺼내주신 덕분에 '언젠가는' 내겠지요. 라는 마음의 소리에서 '언젠가는' 이라는 낱말을 떼버릴 수 있었다.
올 가을엔 책을 만들거다. 이렇게 공표를 해야 뭐라도 하기 때문에 써놓는 거지 절대 김치님 부담을 드리려고 하는 건 아니다. 어제 중국어 수업을 포기한 것이 계속 마음 속에 남아있었는데, 이렇게 새로운 일을 벌이려고 포기했나보다. 내 삶이 더욱 글과 책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좋다. 감사하다. 나중에 읽어보면 오글거리더라도 의욕에 가득찼을 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다.
오늘 김치님께서 주신 선물들. 향꽃이와 드립? 드랍? 커피백과 한땀한땀 직접 바느질해서 만드신 공책. 그리고 초판서점에 들러 책 한권을 사주셨다. 잘 쓰고 잘 읽고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저녁에는 작업실에 들러 목표 분량을 달성하고, 헬스장에 가서 요가를 했다. 잘하고 있습니다.
아. 저녁에 들은 유튜브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당신은 80살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싶습니까?"
나의 답은 이러했다.
쟨 뭘하는 지는 모르겠는데 잘 살아 있어.
적은 답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어하는 인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