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과 엎치락 뒤치락
3월 초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명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빠질 것 같다. 한없이 게으르고 싶은 토요일 오전이다.
'미라클 모닝'을 구성하는 요소는 운동, 명상, 확언, 시각화, 독서, 기록...맞나? 여튼 이 정도로 알고 있는데
나는 거기서 독서를 뺐었다. 아침부터 명상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는데 독서까지 해야돼? 라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하다보니 독서를 해야할 것 같아 머리맡에 위대한 개츠비를 올려두었다.
주말이니까 하루쯤 안해도 돼.
합리화가 스믈스믈 올라왔다. 안해도 된다는 말은 해야된다는 사실의 반증일 뿐이다.
요즘 스스로 느끼는 커다란 변화가 있는데 주로 형태에 관한 것들이다.
삶의 형태. 기분의 형태. 글쓰기의 형태.
써보니 세 가지로 추려졌다. 추려진 김에 하나씩 좀 더 자세히 써보겠다.
1. 삶의 형태
나는 습관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오랜시간 반복적으로 행한 덕분에
애쓰지 않아도 관성의 힘으로 뭔가를 해내는 사람들. 그들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습관'이 없었다. 자기 전에 씻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씻지 않고 잘 때도 많았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운동도 하면 좋지만 안해도 상관 없었다. (역시 지금도 그렇다)
사소한 것들도 하려고 하면 큰 힘이 필요했다.
그런 내가 스스로 루틴을 만들어 꼬박꼬박 행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랍다.
아침 저녁으로 명상을 하고 기록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바뀌고 싶어서, 라고 답한다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적절한 대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치면 나는 평생 바뀌고 싶어했는데 왜 이제서야 루틴을 가지게 되었느냔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루틴 있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루틴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나버려서 그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그런 삶의 태도가 정말 부러웠으니까.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함께 뭔가를 한다. 상대는 나를 위해, 나는 상대를 위해.
하지만 그는 나와 같이 있을 때도 그의 루틴대로 살아갔다.
나는 그것이 정말 좋았다. 그의 루틴을 볼 수 있어서.
그랬기 때문에...그걸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그걸 흉내내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를 만나고 있을 때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으나
이제는 볼 수 없으니, 그것을 직접 실천해볼 기회가 내게 생긴 것이다.
그를 잃고 루틴을 얻었다! (눈물)
2. 기분의 형태
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혹은 부정적인 기분의 근원을 찾아내어 뿌리뽑기 위해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오래 보냈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생각은 안할 수록 낫다'는 거였다.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
우울에 빠져 있을 시간을 운동하는 시간으로 대체했으니 기분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대체였을 뿐 감정을 관리하는 힘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최근 '기분 좋은 상태'로 있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해보았다.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기분 좋은 상태'로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일이었다.
그 다짐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울에서 한 발짝 벗어난 거니까.
그리고 정말 내가 즐거울만한 일을 나에게 해주는 것도 좋다.
가장 중요한 건 우울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거였다.
부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다독여줄 때 그것들이 흘러갔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이걸 안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동안 잘 안했으니까. 한다고 생각만 했지 직접 나를 위해 시간을 낸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오늘도 귀찮다고 안하려고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살만하면 금방 귀찮아진다.
그래서 한번씩 삶이 엉망진창이 되나보다.
귀찮아하지말고 너를 돌아보라고.
절실히 나를 돌아보았다.
바뀌고 싶어서, 나아지고 싶어서, 나쁜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서.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법을 안다.
부정적인 기분이 드는 나를 다독이고, 달래고, 기분 좋아질 만한 일을 하면 된다.
아주 쉽지만 간단치만은 않은 일이다.
3. 글쓰기의 형태
언제나 커다란 과제처럼 다가오는 글쓰기의 문제다.
그동안 나는 '뭐라도 쓰자' 라는 태도로 글을 써왔고, 그래서 진짜 뭐라도 쓰긴 썼다.
'뭐라도' 쓴다는 건, 뭘 쓰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방향성이 필요한 시점이 온 거다.
그동안 써온 목적 없는 무수한 글들을 깨끗이 잊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뭘 쓰고 싶은 걸까?
지금부터는 목적을 정하고 가보는 거다.
그동안 쓴 것들을 돌아보고, 그것들의 공통점을 추릴 수 있다면
아주 어렵지만도 않을 거다.
'남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도 생겼다.
이제 방향은 당연히 내면이 아닌 바깥으로 향하고 있고, 그럼 그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목적의식과 메시지 가지기. 그게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다.
삶과 기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겪은 것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썼는데
글쓰기에 관해서는 앞으로 해야할 것을 적어보는 기분으로 쓰게 되었다.
글쓰기는 언제나 나에게 미래형인가보다.
잡히지 않는 것에 좌절하지 말고 나아갈 것에 집중하자.
후우.
합리화는 끝났다.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아침을 먹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된다. 지금이 몇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