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모습을 받아들이는 자세
외로움이 깊어졌을 때 뭔가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평일에는 잘 때 빼고는 집에 잘 있지 않았기에
내가 2일 행복하자고 반려동물을 5일간 외롭게 두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했다.
생명체를 들이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같은 이유로 처음엔 식물 또한 들이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대안으로 조화 화분을 사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조화로 된 잎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진짜 살아있는 화분을 키우고 싶어졌다.
퇴근 후 꽃집을 어슬렁거리며 키울 만한 화분이 있는지 둘러보는 날이 늘어갔다.
바질은 그래도 키우기가 쉽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주워들었고, 그렇게 바질 화분을 샀다.
물도 적절하게 주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이 어디인지 위치를 바꿔가며 화분을 놓아보기도 했다.
잘 키워보겠다는 다짐을 했건만 집에 오자마자 바질은 나날이 시들어갔다.
엄마한테 하소연하니 꽃집 환경이 식물에게 최적화 되어 있기 때문에 집에 데리고 왔을 때도
꽃집에서처럼 잘 클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아침마다 그리고 퇴근해서 집에 올 때마다 화분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꾸 메말라가는 잎을 떼어냈다.
시든 잎을 떼어내자 그 아래에 조그맣게 새로이 돋아나는 잎들이 숨어 있었다.
잎이 시들고 마르는 것에 집착했는데 이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밀고 올라오는 새순들을 발견한 것이다.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그 어린 잎들을 보며 깨달았다. 잘 자라고 있는 거였구나.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지금은 큰 잎이 좀 마르고 시들어도 어쩔 줄 몰라하지 않는다. 어린 잎들이 잘 자라나라고 시든 잎들을 떼어낼 때도 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그렇게 보아줄 줄 알게 되었다. 시들고 말라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스스로를 책망하기 보다는 안에서 새로운 잎들이 돋아나고 있음을 알고 시든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달까. 화분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화분이 자라듯 나도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