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이라는 낯선 세계

조금씩 들어가볼까 합니다

by 사색의 시간

내가 먹는 것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육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미취학 아동일 때의 기억인데, 엄마 아빠가 싸워서 엄청나게 집안 분위기가 심각해지면 그때 엄마가 치킨을 시켜줬다. 낮에 시작한 싸움이 저녁식사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벼운 싸움으로 끝날 경우에는 치킨이 없었다.) 험악한 분위기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그 속에서도 치킨은 어찌나 맛있던지. 양념 소스를 빨아먹으며 '또 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치킨을 먹기 위해. 혀끝에 닿는 매콤달콤한 맛은 포만감과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불안과 죄의식 또한 안겨주었다. 어쩌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치킨을 시킨 날에도 고기를 뜯고 씹으면서 '또 싸움을 하는 것 아닐까' 덜덜 떨어야 했다.


엄마 아빠는 싸움이 최악의 정점을 찍고 나서도 수습이 안되면 밖에 나가서 싸우곤 했다. (그럴거면 첨부터 밖에 나가서 싸우지...) 당시 TV가 안방에 있었으므로 나는 엄마 아빠의 싸움이 빨리 심각해져서 밖에 나가길 빌곤 했다. 나가면 TV를 볼 수 있으니까! (물론 엄마 아빠가 돌아오면 '너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데 TV나 보고 있냐'고 엄청나게 혼이 났다. 그럼 난 뭘해야했던 거지)


여튼 유년시절 나에게 육식은 '정서적 붕괴에 대한 보상'이었으므로 나는 치킨을 놓을 수가 없었다. 치킨이 아니면 무엇이 나를 위로해줄까. (안타깝게도 그러한 패턴을 통해 나는 '치킨을 먹으려면 정서적 폭력을 감당해야 한다'는 믿음을 형성하게 되었다.)


초-중-고 모두 급식을 먹은 것 또한 육식 생활의 중요 요소였다. 채식으로 이루어진 식단은 없었으니까. 집에서도 엄마는 부지런히 고기를 통해 정서적인 보상을 해주었다. 한솥 가득 조리된 고기가 뱃속을 채울 때마다 충족감과 무력감이 역시나 동시에 몰려왔다. (그렇군. 나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양가감정을 느껴야 하는 환경이었던 거다.)


성인이 되고 엄마아빠로부터 물리적으로 벗어난 뒤에도 나는 우울하거나 무기력할 때마다 치킨을 찾았고 각종 고기를 원하게 되었다. 채식이라는 건 싱싱한 채소를 살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식사에 부지런을 떨만큼 성실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 생각했다. (육식자들이 게으르다는 게 아니고 익숙한 식단에서 벗어나 낯선 무언가를 시도하는 수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최근 명상을 하면서, 내가 아직도 어렸을 때 느꼈던 감정들로부터 해방되지 못했구나 하는 자각의 순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제 나는 더이상 아빠를 원망하지 않는데, 내 안의 어린 나는 여전히 맹렬하게 아빠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너무 절망했다. 그 원망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몰라서. 아빠는 많이 늙고 쇠약해졌고, 무엇보다 내가 원망하지 않아도 충분히 괴로운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나의 해소되지 않은 원망을 끼얹을 수 없다. 그럼 이 아이는, 이 감정은 어쩌지? 해결되지 않은 감정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힘들었다.


그러고 며칠 후 문득 채식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쌩뚱맞았다. 도대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채식이라는 신문물에 어쩌다 관심이 생긴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걸 몰라서 '왜 내가 채식을 하고 싶어진거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답이 나왔다.


육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통해 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소가 괴롭고 돼지가 괴롭고 닭이 괴로운 것보다, 일단 내가 제일 괴롭다. 육식에 담긴 정서적인 힘겨움들이.


여전히 치킨을 사랑하고 힘이 없는 날에는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지만. 그래도 채식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 것은 내 인생에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당장 내일부터 고기를 끊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다짐이 내 인생에 주는 의미를 상기하며 조금씩 다른 세계로 가보아야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작은 출발이 될 테다. 지금으로서는 '한 달에 한 번 채식하기' 정도로 해보려고 한다. 그 날은 나에게 어떤 날이 될까. 조금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풀을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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