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맨날 기분이 더러울까

엉망진창인 자신을 다시 바라보기

by 사색의 시간

오후 늦게까지 이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기분이 나빠져야 할까? 느긋한 주말을 보낸 것이니 잘 쉬었다고 생각하면 안되나. 그러나 어김없이 기분이 나빠지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늦은 오후, 잠옷을 입은 채 책상 앞에 앉았다. 내가 매일 기분이 드러운 몇 가지 이유에 대해 적어보기 위하여.


1.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난 한달 간 아침/저녁 루틴은 물론 한달 동안 만들 새로운 습관에 대한 실천 계획표도 만들어 살아보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까지 계획해두었다. 결과적으로 루틴을 대부분 잘 이행하였고 새로운 습관 역시 매일 빼먹지 않았다. 그래서 한달의 마지막 날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 평소 가고 싶었던 서점에 가서 조용하게 책 읽는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그날은 '글쓰기'까지 이행한 날이었다. (글쓰기는 항상 마음 속에 짐처럼 얹혀진 과제이다)


그 날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전혀 뿌듯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X보다 O가 훨씬 많은 한 달 계획표, 매일 빼곡히 적었던 일기들을 돌이켜보면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잘했는데 왜? 나도 도파민을 느껴보고 싶다.


2. 저녁에 급격히 우울해진다.


아침 루틴은 거의 모두 이행했으나 저녁 루틴은 빼먹는 날이 많았다. 저녁이 되면 너무 기분이 다운되어서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저녁만 되면 급격히 컨디션이 저하될까? 모든 일과를 마치고 하루 중 가장 즐거운 기분으로 보낼 수도 있을텐데. 그건 아마 하루동안 스스로에게 못마땅해하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나는 저녁만 되면 엉망진창인 기분을 수습하지 못한 채 축 늘어져야 했다.


3. 자기 불신


습관이 정착하는 데에는 21일의 시간이 걸린다고들 한다. 그래서 나는 새 습관을 21일 동안 잘 지켰다. 이제 새 습관이 내 일상에 완전히 정착한건가? 하는 생각을 할 무렵 루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던 것도, 명상과 독서를 하던 것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당황스러웠다. 그때 내 안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너는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


4. 평온한 상태를 엉망진창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바깥에서 보면 내 일상은 심심하고 평화롭다. 아무 일 없다. 그런데 내 속은 그렇지 않다. 난리를 치르는 중이다. 지금 이 시간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있어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위의 네 가지는 지난 한 달 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을 함께 해 온 부정적인 요소들이다. 루틴을 가지고 잘 살아보려 하니 그에 대한 저항으로 저것들이 극심하게 더욱 일어난 것 뿐. 저것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열심히 고민했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의지를 다진대도 굳건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냥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놓고도 '난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라고 성취감 없이 우울해 할 수도 있고 저녁만 되면 급격히 다운될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의지를 위협받을 수도 있고 평온한 하루를 불안으로 채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서. 이런 요소들을 한 번 글로 기록해서 정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써보고, 정리를 해놓으면 뇌가 알아서 길을 찾아줄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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