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음악이 듣고 싶을 때도 있고 라디오가 듣고 싶을 때도 있고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은 라디오를 들었다.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출근길에 감사하다.
이번주는 흐린 적이 많았다.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날씨가 흐리면 기분도 흐렸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 흐린 하늘 아래서도 나는 무척 즐거웠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한번씩 <남대문 커피>집의 '남대문 커피'라는 메뉴가 몹시 땡긴다. 달달한 커피일 뿐인데 다른 건 다 싫고 딱 그게 마시고 싶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사수가 사준 커피였기 때문일까. 며칠 전부터 마시고 싶어서 오늘 아침 촉박한 출근길에 뛰어서 커피를 사왔다.
어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에 다녀왔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낯선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내 욕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구나 싶어서. 홍콩의 골목을 기웃거렸던 일. 자전거로 타이완의 산길을 올랐던 일. 커다란 캐리어와 함께 호주로 향했던 일. 그런 것들이 잇달아 떠올랐다. 모두 나의 욕망이 데려다 준 멋진 곳들이었다. 이번에도 내 욕망이 새로운 곳에서 예쁜 싹을 틔우기를.
오늘 나를 울컥하게 한 것은 어느 소설 수업의 안내문이었다. 4주짜리 수업인데, 각 주마다 과제가 이렇다.
1주 : ‘곤히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너는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니”라고 묻는 사람’에 대해 써보자.
2주 : ‘매일 아침, “만일 내가 다른 아버지를 두었더라면……”으로 시작되는 가정문을 중얼거리는 사람에 대해 써보자.
3주 : ‘전 생애를 우는 사람’에 대해 써보자.
4주 : ‘한 인간의 매력이나 총명함 따위는 무자비한 운명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준 사람’에 대해 써보자.
이걸 읽고 어찌 이 수업을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럴 자신이 없다. 안내문 하단 '이 수업을 들으시면 좋은 분'이라는 항목에 '인간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인간에 관심이 없기로 유명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타인에게 관심 좀 가져!"라고 소리질렀다. 그런 내가 무슨 글을 쓰려고 하지. 스스로 의아했던 시간이 있었다.
인간에게 관심이 많아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글을 쓴 덕분에 인간이 되어간다. 나는 늘 인간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했지만, 관심이 없는 자로서 쓸 수 있는 글이 있을테다. 어제 '너무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나니, 내 자신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