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의 핵심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 하나를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생생하게 느끼고 난 뒤 그것을 '홀라당 까먹어야 한다'.
신은 드라마틱한 것을 좋아한다.
'주세요!' 했을 때 즉각 주기보다는 애도 좀 태우고, 시간도 좀 끈 뒤에야 쨘! 하고 나타나 몇 배 더 큰 기쁨을 안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신도 도파민의 법칙을 아는 걸까. 하긴 자기가 만든 거니까 잘 알겠지.)
스터디 카페에 120시간을 충전해놓고 쓰다가 코로나로 인해 몇십 시간을 남겨둔 채 사용권이 만료되었다. 아까웠지만 내가 안 간 거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겼다. 오랜만에 다시 스터디 카페를 찾았다.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얘기 좀 하다가 '사용권이 만료되어서 당일권을 끊어 쓰려한다'고 하니까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주겠다고 하셨다.
얼마 뒤 메시지가 왔다. '코로나로 인해 이용이 어려우셨을테니 30시간을 충전해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선물 같은 일이었다. 내가 날린 시간이 그 정도였을 텐데, 그만큼 더 충전을 해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스터디카페 날린 시간 돌려 받게 해주세요'라고 빈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단념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생각해보니 최근 내가 한 건 이런 거였다 : '글쓰기를 행복한 행위로 인식했다.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구체적으로 노력했다.'
행복. 감사. 구체적 노력. 이 세 가지가 핵심 포인트였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 끌어당겨진다. '이걸 끌어당겨야 해'하고 인위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러면 신이 알아서 준다. 내가 뭐가 필요한지 보고 있다가 가장 알맞은 타이밍에 보내준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늘 우리는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중이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신은 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