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하기

by 사색의 시간

주말에 뭘했더라. 누굴 만나지도 않고 딱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충만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든 게 느렸다. 느리게 일어나 느리게 씻고 느리게 정리한 다음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었다. 천천히 한다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느리게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때는 역시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어린이용 책상에 앉아 느리게 썼다. 한 문장을 썼다. 내가 써야 할 글이 20만자라면 한 문장은 10자 남짓. 개미 눈꼽만큼의 양이다. 그런데도 한 문장으로 뿌듯했다. 신기했다. 느리게 썼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쓰면 쓸수록 도달하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더 불만족스럽다. 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정은 명확하다.


월요일. 오전 내내 빠르게 처리하려던 일을 결국 끝내지 못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그 일은 잠시 접어두고 다른 일들을 천천히 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나는 내일 해야 할 것 같지만, 뭐. 괜찮다. 괜찮다는 말을 이럴 때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의 별자리 운세는 이렇다.

[쓸데없는 걱정은 내려놓고 무조건 현재에 집중하세요. 시간이 지나면 그게 가장 빠른 루트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느림 속에서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 느리면 느릴 수록 그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던 빛들이 터져나온다. 눈부신 빛을 보면서 생각한다. 느리다는 건 정말 섹시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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