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곰국

by 사색의 시간

영어 성경, 중국어 성경, 금강경을 필사하고 나면 오전 루틴이 끝난다. 성경필사는 영어와 중국어를 대조해보며 쓰려했는데 한쪽은 너무 축약되어 있고 한쪽은 너무 꼼꼼하다.


본가에 <니체의 말> 을 두고온 기억이 났다. 명언집처럼 한 페이지에 짤막한 글귀 하나가 담겨있도록 구성된 책이다. 필사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니체의 말>을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


며칠 뒤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상자를 여니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곰국이었다. 엄마는 택배를 보내는 김에 먹을 것도 같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곰국을 무척 좋아한다. '아이, 무슨 곰국이람. 책만 보내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곰국을 꺼냈다. 그리고 상자를 내다버렸다.


곰국을 본 순간 <니체의 말>을 까맣게 잊은 나는 며칠 뒤 '아 맞다, <니체의 말>을 어쨌더라?'하면서 집을 뒤졌다. 한참 뒤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때 곰국만 꺼내고 책은 상자 째로 버렸다는 것을. 웃기고도 충격적이었다. 곰국에 정신을 빼앗겨 책은 안중에도 없었다니. 그래서 버려버리다니.


니체에게 미안하다.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난대도 곰국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못하겠다. 내게 필요한 건 니체보다 곰국이었던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샐러드를 먹기로 결심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