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까지요?”
“아니요. 이달 말이요.”
떨리는 내 목소리가 뒷말을 뭉개는 바람에 ‘이번 달’에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이번 주’로 들렸나 보다. 조용한 곳에서 연구사님께 나의 퇴사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자 그분이 돌연 내게 묻는다.
“언제부터예요?”
내가 언제부터 사직의 마음을 먹고 있었냐는 물음이다.
“7월. 한창 여름일 때부터요.”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견디고 견뎠다. 한창 더운 여름이었는데도 나는 그간 으슬으슬 몸이 추웠고 마음은 종종 한기까지 들어찼다. 아주 가끔 혼자 궁상을 떨며 질질 짜기도 했다. (이 나이에 무슨 추태인가 싶지만 눈물은 나이를 가리고 오는 게 아니더라는 깨우침을 얻었다.) 무엇을 그리 크게 잘못했기에 이리 나에게 냉정하게 구는 것인지 답답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 동료를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
“그럼, 퇴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퇴사 전 ‘단 한 번만 솔직해질 수 있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지금까지 ‘쇼윈도 직장 동료’였던 우리 둘의 관계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 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가볍게 ‘인간관계’라고만 사유를 밝히는 건 괜찮지 않을까. 나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퇴사 사유’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인간관계가 좀 힘들었어요. 제가 부족해서인지 상황이 나아지지를 않았네요.”
떠나는 마당에 다른 이의 명성에 흠집을 내어서 쓰겠느냐는 나의 양심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아마, 누구든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겠지. 그러나 그 연구사님은,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어요. 계기가 있었을까요?”
라고 말한다.
‘아, 그랬구나.’
나는 아무도 모르고 있을 줄 알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와 단둘이 있을 때,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도 동료도 필요에 따라 ‘불현듯’, 그리고 ‘때때로’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지금 내 앞의 연구사님은 동료와 나의 온도가 달라진 걸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이제부터 한결 말하기가 수월하다. 마지막까지 아무 말 없이 직장을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눈치를 채고 있었다는 그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어리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주책없이 눈에서 짠물이 쩨쩨하게 번져 나오고 있다. 나는 일부러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눈두덩이와 눈 밑을 상하로 찢는 시늉을 한다. 이런 상황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울지 않으려는 의지를 해학적으로 승화하려 용을 쓴다. 그러나 자꾸 내 눈 안에서 찰랑찰랑 짭짤한 물이 흘러넘치려 한다.
“딱히 계기는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 엄청나게 잘해 줬었는데 그냥 갑자기, 어느 순간 그냥……. 아마 그쪽도 이유는 있었을 것 같아요. 하나의 일을 경계 없이 둘이 나눠서 해야 하고…….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일을 그 사람이 더 많이 감당했어야 하니까……. 제가 뒤늦게 들어온 데다 뭘 잘 몰라서 그 사람도 힘들었을 수는 있을 거예요. 저는 우선 일이든 상대든 좀 맞춰 주고 받쳐 주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나 봐요.”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이야기 도중 그녀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는다. 허공에서 네 개의 손이 잠시 만났다 흩어진다. 그녀 자신조차도 의도하지 않은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사실 어느 누구한테도 이런 내 상황이나 감정을 이렇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결국 이곳에 더 오래 남아 있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상대 동료라 생각했다. 그러니 이 사람 붙들고 수군수군, 저 사람 붙들고 ‘글쎄, 저치가 나를 무시해!’ 이런 식으로 말을 옮기며 직장 내에서 공연히 잡음을 만들기는 싫었다. 그러고 보면 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으면서 혼자 겉으로는 고고한 척, 착한 척은 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그녀의 작은 한마디에도 가슴이 ‘와다다다’ 곤두박질치듯 무너져 내린다. 게다가 이런 퇴사 고백에 손까지 덜컥 잡히다니……. 심지어 그녀의 손은 따뜻하기까지 하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이 질문은 예비 퇴사자가 통과해야 할 공통 질문이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질문이었음에도 내 입술은 멈칫한다. 나, 이제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책 쓰실 거예요?”
한 번 어설픈 책을 낸 경험이 있는 나를 두고 상대는 진지하게 내 미래를 묻는다.
“네. 책도 슬슬 쓰고 책 만드는 일도 좀 해 보려고요. 지금처럼 고용되어 일하는 것보다 안정된 일은 아니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좀 해 보려고요.”
“사실 전에 관둔 선생님도…….”
그분이 먼저 이 말을 꺼낸다. 사실 내가 오기 전에 내 자리에 있던 분은 7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 이유가 아마 나와 같았던 듯하다. ‘직장 내 갈등.’ 나아가 단 한 사람과의 갈등. 우연히 내 전임자와 내가 이곳에서 비슷한 끝을 맺는다. 이것은 우연일까, 예정된 수순이었을까. 나는 입술을 굳게 여민다. 아마 내 전임자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마디를 더 보태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내 권한이 아닌 듯싶다.
“마음을 굳히신 것 같네요.”
“네. 회사에도 이미 말했습니다.”
용역 업체 소속이라 그만두겠다고 말하거나 알려야 할 곳이 좀 많다. 본사 실무자분과 이사님, 그리고 여기 내가 머물며 일하는 곳의 연구사님과 우리 과 과장님.
“아, 벌써 회사에까지 말씀하셨어요?”
이 말을 들으니 이 연구사 선생님께 미리 얘기했더라면 내가 지금 다른 선택지를 쥐고 있었을까, 싶은 마음이 살짝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같은 선택을 했을 테고 같은 답안을 골랐을 것이다. 그게 틀린 답으로 판명이 나든 어쩌든.
중간에 답을 고치면 꼭 처음 골랐던 답이 정답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처음 생각한 답에 마킹을 하고, 그저 미래의 내가 그 답을 옳은 답으로 만들어 주길 기대해야 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에 해야 할 인사를 한 달을 앞두고 미리 드린다. 나보다 어린 연구사님이지만 상사 역할을 잘해 주던 분이다. 일을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나의 일터를 부드럽게 꾸며 준 분이기도 하다. 부디 그분의 앞날에도 더 예쁜 꽃이 피어나길 빈다.
그만둘게요, 한마디 덕분에 본의 아니게 나를 돌아보는 인터뷰 시간이 되었다. 나는 두서없었지만, 내 퇴사 사유를 들어야 했던 선생님은 뛰어난 ‘인터뷰어(인터뷰하는 사람)’였다. 나조차도 소상히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오늘의 이 퇴사 인터뷰에 쏟아부었다. 그만둔다는 말을 다 털어내고서야 막막했던 내 길이 이제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다.
조금 전까지 내가 걸었던 길은 한쪽으로만 빽빽하게 뻗은 길이었다. 그런데 조금 더 걷다 보니, 두 갈래로 나뉜 길이 나오고, 듬성듬성 볕이 들어오는 길도 나타난다. 또, 더 가다 보니 뜻하지 않게 편히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기도 있다.
그래, 이대로 조금만 더 걸어 보자.
내 앞에 뭐가 나타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은 괜찮다. 걷다 보면 뜻하지 않은 나를 만나 한껏 크게 웃을 날도 있겠지, 라고 스스로 퇴사를 응원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