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오늘부터 점심 따로 먹을게요.
-네.
우연히 이어폰에서 ‘끝나 버린 노래’는 다시 부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앙코르는 받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어쩐지 애잔하다. 퇴사를 말한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듣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는 ‘이 세상에 번복은 없다’라는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목소리에 힘을 쭉 뺀 듯 ‘안 돼요’라고 말하는 음성 끝자락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단호함이 배어 나온다.
‘그래 나도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일단 한번 칼을 뽑았으니 우선 되는대로 ‘퇴사’라는 무라도 썰어야 한다. 뭉텅뭉텅 보기 좋은 모양은 아니더라도 힘을 주어 썰어야 한다. 그 잘려 나간 한 덩이는 ‘내 책상 정리’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 덩이는 ‘내 컴퓨터 폴더 정리’, 또 다른 한 덩이는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정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덩이는 ‘내 지난 과거를 회자정리’하는 일일 수도 있다.
업무 특성상 늘 단둘이 붙어 다녔어야 했기에 사이가 안 좋아졌음에도 나와 그녀는 늘 밥을 같이 먹었다. ‘서로 안 좋은 사람들’끼리 무슨 점심이냐고 묻겠지만, ‘같이 먹는 점심’은 아마도 마지막 남은 예의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이것마저 끊으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이 관계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그랬기에 나에게도 ‘점심 독립 선언’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관계가 이 모양이 되기 전까지 우리(갈등이 있던 동료와 나)는 제법 가까이 지냈다. 동료와 한창 친할 때는 점심만 얼른 먹고서 함께 얕은 산을 타기도 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우리가 걸은 거리를 확인하고는, 우리가 이렇게나 많이 걸었다며 같이 ‘큭큭’거리기도 했고, 한강까지 따릉이를 빌려 타고 가 보자며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다 위험천만하게도 대형 화물차들을 만났고, 우리는 웃지 못할 자전거 에피소드를 만들기도 했다.) 가끔은 콩 한 쪽 분량의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또, 동료는 내게 ‘자신이 타인에게 욱할 때면 자신을 살포시 말려 달라’는 재밌는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욱’이 나에게 닥칠 줄은 꿈에도 모르고서…….) 그 정도로 한때는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무엇이 그녀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고, 또 나는 왜 속수무책 당하는 기분으로 쭉 버텨야 했던 걸까.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질문도 내게서, 우리의 관계에서 다 거둬 내기로 한다. 퇴사 인터뷰를 마친 나는 이제 더는 소심했던 어제의 내가 아니다. 오늘 나는 이렇게 그녀에게 문자를 남긴다.
선생님, 저 오늘부터 점심 따로 먹을게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내가 먼저 ‘우리'였던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싹둑 자른다. ‘맛있게 먹으라’는 공허한 당부와 문장 끝에 붙은 물결 표시(~)는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정다움’이다. 아니 어쩌면 그건 가식인지도 모른다. ‘만들어 낸 정다움’은 가짜의 감정일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나와 그녀는 가짜의 감정까지 떼어 내야 한다. 그리고 따로 난 길로 걸어가야 한다. 밥도 따로 일도 따로 눈길도 발길도 철저히 따로 걷는다.
앙코르는 없다. 동료였던 우리의 노래는 끝이 난다. 한 직장에서 단둘이 부르던 노래는 갑자기 파국을 맞이했고, 꽤 친해 보였던 듀오는 구설수를 남기며 해체된다. 나는 곧 이 무대를 내려갈 것이고, 이제 나의 동료였던 그녀가 이 무대를 솔로로 꾸밀 것이다. (혹은 새로 영입한 멤버와 함께 팀을 재정비해 이듬해의 무대를 채우겠지.)
지금부터 나는 솔로로 살아가야 한다. 솔로로 살아가려면 노래든 일이든 밥이든 그 어떤 무대든 혼자 알아서 척척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나는 퇴사까지 ‘스무 개쯤의 혼밥’이 남아 있다. 이제 점심쯤은 나 혼자 오롯이 책임지기로 하자. 그동안 매번 동료의 식성을 따라 먹는 편이었다. 직장 내 식당에서 단돈 3,000원으로 싸고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나는 웬만하면 상대가 먹고 싶은 대로 외부 식당을 이용한 적이 많았다.
오 그만…….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짓도 그만. 식성까지 숨기며 상대에게 맞추는 그런 이중적 잣대는 이제 정말 그만.
나, 오늘은 혼자 식당에 들어간다. 거기서 다시 내 식성을 되찾고 싶다.
“포장하세요?”
식당 사장님께서 나에게 묻는다.
“아니요. 여기서 혼자 먹고 가려고요.”
일부러 ‘혼자’를 더 굳세게 발음해 본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더는 부서진 관계나 버스 떠난 직장에 앙코르를 요청하지 않으련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노래할 수 있고, 언제든 내 무대를 나 스스로 다시 만들 수 있다. 어쩌면 그 무대가 둘이 만드는 무대보다 훨씬 더 맛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나,
내일도 어김없이 나 혼자 점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