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_타인을 향한 이해의 노오오오오력

by 봄책장봄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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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일기 15화_타인을 향한 이해의 노오오오오력(2018.12. 작성)



너는 여기 남아 있고 나는 떠난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처럼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게 딱히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인 물을 떠나며 가뿐해질 나와 그런 내가 없어짐으로써 홀가분해질 너를 생각한다. 고역의 시간 속에서 너도 과연 힘들었을까, 싶지만 물론 너도 당연히 심히 부대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한번 너를 파헤쳐 보기로 한다. 내가 굳이 이러려는 이유는 ‘내가 지금 막 행복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자는 여유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라는 타인을 이해하면서 내 여유를 부려 보려 한다, 그것이 만일 가능하다면 말이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요


네게서 얼핏얼핏 들었던 말. 회사도 너의 ‘열심히’를 인정한다. 너 없으면 회사 못 굴러갔다. 우리는 파견자 위치여서 회사와 멀리 떨어져 일했고, 너는 중간 역할을 아주 잘해 주었다. 회사는 능력 있는 너에게 온전히 의존했다. 그리고 나도 처음엔 그런 너를 믿고 의지했다. 너는 너 자신의 어깨가 늘 무거웠으므로 일을 척척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달랐다. 너는 능력 없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꽤 오랜 시간 분투해야만 했다.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너는 정보통


너는 이곳에서 아주 오래 일했었기에 ‘핵인싸(무리 속에서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 핵+인사이더)’라고도 할 수 있다. ‘정보통’이고 모르는 소식이 없다. 나도 너를 통해 정보를 전해 들었고 원내의 돌아가는 사정을 알았다. 너로 인해 관계를 넓혔거나 부적절한 정보를 걸러 냈다. 너도 꽤 장점이 있는 사람이다.



터져 버린 콩가루 사이


이건 결국 엎질러진 너와 나의 관계를 일컫는 말. 하나씩 억누르고 억누르던 것이 결국 가루 가루 터졌다. 그리고 그 방향은 다름 아닌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터진 잔여물들을 고스란히 맞았다. 어찌나 정통으로 시원하게 맞았는지 아직까지 얼얼하다. 네가 일을 잘하고 열심히 했던 것을 알기에 나는 피하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서 너의 책망과 화를 맞고 서 있었다. (그랬더니 너, 근데 자꾸 더 때리더라.)


네 덕분에 알았다. 일을 원활히 못하면 얻어맞는다. 이 세상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세상의 설계와 너의 설계는 잘 맞아떨어졌고 이 세상과 나의 프레임은 조금 엇갈렸다. 네가 속한 세상에서 너는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는 것, 나도 그것을 안다. 넌 열심히 했다. 그리고 꽤 잘했다. 너의 노력을 이해해 본다. 그 노력에 부응할 만한 파트너가 내가 아니라서, 그것은 참 유감이다. 이를 이해해 보고자 나도 노력하련다. (하지만 나도 내 세계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네 성에 안 찼을 뿐.)



속이 안 좋아요?


이것은 한때 다정했던 너의 인사. 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워서 기침을 하는 사람, 발을 다친 사람, 배를 쓰다듬는 사람에게 다정히 묻곤 한다. “괜찮아요?” 너는 나에게도 물었다. 속이 안 좋아요? 어떡해요? 우리는 그렇게 다정한 인사도 나누고 늘 옆에 붙어서 서로만 통하는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한때’ 그랬다. 지금도 너는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에게 친절하다. 그 친절의 경계에서 나만 살짝 제쳐둔 것뿐이다. 그런 너에게 이번엔 내가 되바라진 질문을 던진다.

“나를 미워하느라 너도 속이 참 안 좋았겠네?”




몇 개의 글자들로 너의 모습을 곱씹어 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너를 모른다. 너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들이 나의 마음에 위해를 가한다. 그래서 ‘너’라는 상흔 조각을 나는 자꾸 파묻고만 싶다. 이 글을 시작하며 ‘나는 막 행복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앞에서는 어쩐지 조금 작아지는 행복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네가 말만 걸면 조금 움찔한다. 내가 또 뭘 잘못했나? 괜히 움츠러드는 것이다. 주눅이 드는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지만 늘 들킨다. (이런…….) 이런 식으로 너에게 길든 나 자신이 때때로 초라하다.



그러나 퇴사 의지를 밝힌 12월부터, 즉 이 퇴사 일기를 쓰고부터 나도 조금씩은 달라졌다. 예전에는 타이머까지 맞춰 놓고 열심히 일하던 나였지만, 이제는 한번 화장실에 갔다 하면 함흥차사다. 물을 받으러 물병을 들고 나가는 건 핑계고 일단 사무실을 나서면 일부러 창밖을 오래 쳐다보다 들어오곤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이 되고도 아직도 나는 너의 발자국 소리가 왠지 좀 두렵다. 언제 다시 나에게 날을 세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제 더는 너의 그 칼날에 찔리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내가 너무 ‘우리’를 몰랐다. 함께 ‘직장’이라는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는 발 크기도 발 모양도 달랐다. 그 사실을 잊고 함께 달렸다. 우리는 이인삼각의 이 경기에서 숨을 함께 고르며 굳세게 박자를 맞췄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따로 나동그라졌을까? 우리의 발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승리의 지점에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너와 승리와 상관없이 천천히 발을 맞추고자 했던 나는 원래부터 다른 발 모양을 지녔던 사람일까.

아마도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사자 앞의 순진한 아가’였던 것 같다. ‘일터’라는 이 전쟁터에서는 ‘아가’ 따위는 필요 없음을 이제야 몸소 느낀다.



이제 이 아가도 주변을 경계하고 아가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총알을 주문하고 허리춤에 비상시를 대비한 권총도 장착했다. 나, 이렇게 사람을 무서워할 줄도 알게 됐고, 무서움으로 나 자신을 무장할 줄도 알게 됐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안다. 다 네 덕분이다. 네가 무서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직은 확실히 모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한다. 더는 너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나 한편 너를 이해하려는 내 노력을 잠시 뒤로 미루려 한다. 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상처받았던 나부터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 너와 멀리 떨어져야만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일 것 같다. 나를 작고 무능한 사람으로 보는 너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내가 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듯하다.


퇴사,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우선 이해해 보고 그다음, 아주 아주 시간이 남아돌거든, 그때 어쩌다 한 번쯤 ‘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노오오오오력’하겠다. (그건 아주 먼 훗날 내가 ‘할머니 나이‘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너도 나도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한낱 미물이고 외로운 인간들이다.

고로 너도 나도 거, 참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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