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가요...
직장인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 회사는 크리스마스를 떠나보내자마자 회식 자리를 마련하여 사원들을 달랜다. 그리고 그사이에 끼어 ‘나’라는 사람의 마무리도 작은 목소리로 소개된다. 이 직장에서 나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 회식이다.
“다 드셨으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과장님이 말씀을 꺼내신다. 많은 사람이 무슨 소리지, 하는 눈빛으로 과장님의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작별 인사말이라도 준비했어야 하나 싶지만 딱히 일어서서 마지막 멘트를 던지라고는 하지 않는다. 멋쩍은 고개 숙임과 어색한 감사 인사로 사람들의 얼굴을 훑는다. 열한 개의 얼굴들이 제각기 적당한 아쉬움을 표정에 담는다. 응당 퇴사자에게 지어야만 하는 적당한 농도의 표정들이다.
그러나 변함없다. 이 세상은 잘도 돌아가고, 차차 그 세상에서 ‘나’라는 모래 알갱이는 ‘쏘옥’ 빠져나간다. 겨우 모래 한 알 분량이므로 ‘나’의 이탈 따위로 세상의 밀도나 질량, 부피, 무게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다행히 잘 먹고 퇴사하는 인간이라 요새 내 때깔은 퍽 보기 좋다. 볼살도 뱃살도 등살도 아주 그냥 통통하게 물이 올라 있다. 한편으로는 여기서 얻어 가는 게 ‘살’뿐이면 뭐 어떠하랴 싶다. 잃는 게 많은 ‘퇴사’라는 결론에서 든든한 살덩어리라도 배에 가득 두르고 가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다. 그러니 나, 아주 잘 먹고 잘 죽으련다. 내 안에서 이곳을, 이 시간을 잘 씹어 잘 소화하고 아주 잘 죽게 하련다, 시나브로 천천히…….
그런데 직장에서 주는 공짜 밥(회식)을 먹다 말고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툭 한마디를 던진다.
“이제 짝꿍 없어서 어떡해?”
설마요. 그럴 리가요. 겉으로는 소리 없이 웃지만, 속으로는 결코 웃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내 퇴사의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들은 아직도 나와 그녀를 ‘짝꿍’으로 묶는다. 아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았어도 눈치챘을 우리 사이의 균열과 틈. 이제 그녀도 짝을 완전히 잃었고, 나도 완벽하게 짝을 잊는다.
아주 간절히 ‘잃기’를 바랐던 ‘짝’ 이건만 마지막 회식 시간이 되자, 아주 조금은 허망하다. ‘짝꿍’이던 그녀를 완전히 내 삶에서 삭제하기 때문에 허허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그 1년 반의 시간 동안 그렇게나 가까웠던 거리가 한 우주와 다른 한 우주의 거리만큼이나 멀어졌다는 것이, 아니 그 먼 거리 와중에도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었다는 것이 참으로 괴이하고 헛헛하다.
“짝꿍 어딨어?”
누군가 또다시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저희 세트 메뉴 아니에요. 저는 진작에 새 단품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렇게 독립을 선언해야겠다.
그동안 우리를 세트로 취급하던 사람들 앞에서 그녀도 나도 당당히 분리를 선언해야 할 시기이다. 그녀는 다른 동료를 만나 다시 세트 메뉴로 분류되겠지만, 나는 이제 아니다. 포장은 초라할지언정 나는 오롯이 내 이름을 달고 새 단품으로 이 세상에 발을 내디딜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회식이 끝나간다. 이 직장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나니 조금은 허망하고 다소간 섭섭하다. 정들자 이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더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 나는 지금 한쪽 문을 급히 닫았으니 다른 쪽 문으로 향해야만 한다.
문밖에 더 혹한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낭만 따위 접어 두고
백수 대책이나 강구해 두자.
(작성 시기: 2019년, 표지 출처: 픽사베이@Alexas_F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