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남들 출근 구경
남들 다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에 ‘남 일 보듯’ 출근 구경을 하리라. 이제 진짜 ‘남 일’이니까.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 의자에 앉아 내리고 타는 발걸음들을 무심히, 아니 슬며시 웃으며 바라보리라. 이런 내가 부럽거든 작은 용기만 내면 된다. 사. 직. 서. 용. 기. (그러나 발걸음도 가벼운 그 퇴근 시간 구경만큼은 배 아파 안 하련다.)
그다음 하고 싶은 것은, 늘어지게 늦잠!
8시간 넘게 자 보고 싶다. 평일에 7시에 일어나는 게 소원이었다. 늘 5시나 5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다. 이제 드디어 소원을 성취할 때가 왔다. (물론 이 행위를 지속해서 반복하다가는 부모님께 아주 고약한 꾸지람을 들을 수 있으니, 퇴사자의 늦잠은 단기 처방으로만 사용해야겠다.) 늦잠을 자면 그럼, 아침밥은 어찌하면 좋을까? 나는 평소 ‘아침밥은 늘 챙겨 먹자’는 주의긴 하지만, ‘아침밥을 건너뛴 점심’도 때때로는 옳다고 본다. ‘퇴사’라는 아침에는 이따금 늘어진 늦잠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고 나서는, 아침 차 한 잔과 느긋한 명상
그동안 억지로 명상을 한 적이 많았다. 명상이 좋다는데, 라는 말만 어디서 주워듣고서 유튜브를 찾아 어설프
게 따라만 했다. 늘 시간에 쫓기듯 명상을 해치우곤 했다. 이제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요, 시간도 뭣도 더는 날 추격해 오지 않는다. 인제 아주 느리게 차를 마시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눈을 감고 명상에 푹 빠져 보리라.
그리고 부모님과 평일 한낮의 산책
해가 반짝 나온 날도 구름이 비죽 나온 날도 상관없다. 무조건 평일에는 부모님과 산책을 가리라. 비가 오면 우산을 나란히 쓰고 길을 걸으리라. 생각 없이 걸으면서 부모님 얼굴, 부모님 뒷모습을 실컷 구경하며 내 마음을 가득 충전하리라.
또, 조카들 하원 시간 후에는 그 고사리손들을 잡고 만화를 시청!
조카들을 꼬드겨서 만화 영화 한 편을 웃으며 같이 시청하리라. ‘헬로○봇 ○○○○ 섬의 비밀’도 좋고 ‘뽀로○ 극장판 ○○섬 대모험’도 좋다. ‘꼬마버스 ○요의 에○스 구출 작전’도 ‘다시 보기’ 해야지!! 혀니, 호니 기다려라. 이 훈이모가 퇴직금으로 마구마구 만화 ‘다시 보기’도 결제해 주마~~!!
때때로 도서관이든 공원 벤치든 죽치고 앉아 침 흘리며 독서를!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침 흘리는 독서다. 열렬히 빠져 읽어서는 안 된다. 아주 대강대강 해야 한다.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시간을 방치해 보자. 무언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책장을 단단히 넘기지 말고 대충 훌훌 넘기자. (인생도 어디 이번 장 다음에 다음 장으로 곧바로 넘어가던가? 26쪽을 읽다가도 152쪽으로 넘어가고 다시 후진하여 98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인생이더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이것, ‘나를 위한 용서’가 필요
이제 나, 이 직장에서 더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나 자신을 용서하고 지금까지의 나와 화해하련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아찔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던 지난날의 나를 보듬어 주리라. 끝까지 아무 말 못 했거나 더 이상 아무 말 안 했던 나를 두드려 주고 ‘잘했어. 수고했어.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 잘했어!’라고 나의 퇴사에 대해 호탕하게 웃어 주리라. 설마 이보다 더 험한 꼴을 보겠어? (그러나 ‘설마’가 늘 사람 바짓가랑이를 잡기는 하더라마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백수가 아닐 때도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직장’이라는 단단한 줄을 끊고서야, 쾅 소리를 내며 뒷문을 닫고서야, 그리고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서야 이것들을 해 보려 한다. 이제야 내가 보인다. 내가 어떤 삶을 간절히 원했었는지 지금에서야 아주 조금씩 어렴풋이나마 보이기 시작한다.
나, 백수가 되자마자 나를 위해 펑펑 쓰리라. 돈은 많이 못 쓰겠지만 시간과 감정은 나를 위해 ‘펑펑펑’ 쓰리라. 퇴사. 그날은 온전히 나의 날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꽤 충분히 애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