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_마지막 수업, 마지막 무대

by 봄책장봄먼지

이 직장에서 2018년 한 해 동안만 청소년 2,607명을 만났다. 나는 직장에서 ‘우리말 체험’을 지도했다. 학교나 단체, 혹은 개인이 ‘우리말 체험’을 신청하면, 90분 내지는 120분 동안 전시물을 활용하여 우리말을 탐험하도록 안내했다. 바로 그 체험의 무대가 바야흐로 내 인생에서 ‘엔딩’을 앞두고 있다.



그 마지막이 오기 전에 나는 2,607명의 아이들에게 제법 많이 들었던 말, 혹은 기억에 남는 명장면들을 이 지면에 잠시 추리고자 한다.

우선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는 다음과 같다.



어떻게 저희 이름을 다 외우셨어요?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짓(?)이라곤 체험 온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외워 주는 일. 체험하는 동안 일부러 아이들 이름을 크게 불러 주고, 체험이 끝나면 가끔 다이어리나 나만의 일지 등에 오늘 다녀간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보곤 했다. 체험 온 학생 수만큼 모든 아이의 이름이 모조리 생각나는 날에는, ‘오늘은 운이 좋으려나’라고 말하며, 나만의 싱거운 점을 치기도 했다. 간혹 얼굴만 기억나거나 이름만 생각나는 경우도 있었고, 혹은 이도 저도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이게 안타까워할 일인가 싶겠지만, 잠깐 보고 만 아이들의 얼굴이나 이름은 내게 조금은 안타깝고 소중한 대상들이었다.) 그럴 때면 연상법을 이용해 아이들의 이름을 내 안에서 소환해 내려고 노력했다.



‘아, 맞다, 맞다. 그 친구 이름이 만화 제목이랑 비슷했는데, 뭐였더라? 그래, 그래. 조카들과 같이 보던 만화, 옥○○의 그 옥토! 탐험 보고, 탐험 보고, 라고 노래 부르던 그 만화. 주인공 바나○과 페이○, 콰○가 함께 외치던 그 옥○○!’



이런 식으로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굳이 찾아내려 애쓰며, 근무 시간에 공공연히 딴짓을 하곤 했다. 윤기 나는 토양처럼 예쁜 이름이었던 ‘옥토’라는 아이도 있었고, 네 이름을 보니 ‘퇴근’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고 고백(?)했다가, ‘어른들한테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듣는다’며 찡그리던, 귀여운 '태근'이란 아이도 있었다.


어쩌면 이런 암기의 행위들은 ‘세상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다. 이 아이들, 이 2,607명의 아이들은 나를 잠깐 스친 옷깃들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굳이 바랐다. 내가 이름을 불렀던 그 모든 청소년이 늘 건강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꿈을 ‘척척’ 혹은 ‘기똥차게’ 이루어 나가길……. 그렇게 모두가 사라진 빈 의자에 앉아 나 혼자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곤 했다.



앞으로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 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이 직장을 떠나며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름을 불러 주면 정말 순식간에 꽃이 되고 의미가 되어 주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젠 어느덧 마지막 수업에 도착하고 말았다. 만나자마자 모르던 아이들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 주던 그 시간들이 어쩐지 조금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이렇게 ‘그리움’이란 감상에 홀로 젖어 있는데 누군가가 신발장을 나서며 뒤돌아 내게 인사를 한다.



행복하게 보내세요!


오늘은 이 직장에서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었는데, ‘중2병’이 대체 실체가 있긴 한 건가, 싶을 만큼 순한 아이들이었다. 특히 띄어쓰기 문제를 풀 때 ‘중2병’ 대신 ‘초등스러움’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예문 위에다 띄어쓰기 부호(∨)를 간단히 표시만 해도 되는데 이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처럼 성실히 문장 전체를 한 글자 한 글자씩 모조리 다시 새로 쓰면서 띄어쓰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보다 키가 큰 이 녀석들을 나는 고만 ‘우쭈쭈’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오늘 처음 만났고 이제 살면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아니, 영영 안 만날 확률이 높은) 나에게, 어떤 여자아이가 대뜸 이런 말까지 남기고 간다. 일부러 다시 뒤돌아서면서까지 그 아이는 나에게,

“크리스마스이브, 행복하게 보내세요!”


아, 이런……. 이런 따뜻한 마음은 정말 어디 가면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인사에 마음 다해 있는 힘껏 ‘어이쿠’ 감탄사를 세게 발음하고는, “고마워요!! 우리 친구들도 크리스마스 즐겁고 신나게 보내요!!”라고 정성껏 답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그 옆에 있던 어느 다른 소녀가, 그것도 체험 내내 약간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던 한 여자아이가,


“저처럼 크리스마스 혼자 보내지는 마시고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농담까지 곁들여 내게 성탄 맞이 인사를 해 준다.

귀여워 귀여워, 중2인데도 진짜 귀여워!!



마지막 수업이었다. 마지막이 참 고맙고 뜨듯했다. ‘중2’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무대였고, 아이들의 기운으로 또 한 번 ‘봄 같은 겨울 하루’였다. 혜○, ○나, 서○, ○주……. 이 직장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이 청소년들의 이름을 여기에 다시 적으며 그 아이들의 힘차고 밝은 미래를 굳세게 응원하고 싶다.



이렇게 몽글한 기분 속에 있을 때도 어김없이 ‘마지막’은 찾아오고야 만다. 아이들을 향했던 내 작은 응원의 함성이 점점 잦아든다. 이제 정말 시간이 다 되었다.




연극은 끝났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나 홀로 앉아 본다. 내가 항상 가운데 서야 했던 그 무대에서 잠깐 내려와 객석에서 무대를 올려다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직장에서 나의 무대를 꾸민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이곳에 체험을 와 준 아이들이 어쩌면 진정한 내 동료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꾸민 무대에 거침없이 올라와 열심히 문제를 풀어 주었다. 이따금 내가 내미는 마이크에 성실히, 혹은 마지못해, 혹은 귀찮다는 듯이, 가끔은 수줍어하며, 각기 자신의 방식대로 내 물음에 응답해 주었다. 그들은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내 공간을 채워 주었다.



마지막 무대에서 내려오고서야 내 청소년들이 무대와 객석에서 늘 무대의 주인공으로 ‘열연’해 주었음을 깨닫는다. 그제야 직장 동료 하나로 힘들어했던 내 모습이 왠지 좀 우스워진다.



내게는 이미 일 년 내내 약 2,600명이 넘는 든든한 동료가 있었다.

그 동료들을 두고 고작 하나의 인연 때문에 고달파 했다니……. 우습다 못해 ‘사표’라는 객기 아닌 객기가 장난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내 연극이 마지막 장으로 넘어간다. 이 직장에서 나는 어떤 연기를 마지막으로 보여 주어야 할까. 착한 척하는 연기일랑은 그만두고, 이번만큼은 그냥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연기하고 내려오자고 다짐해 본다.



무대는 불이 꺼질 테지만 진짜 연기는 이제부터다.

어느새 나의 무대에서 마지막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 노래는 아마도 내가 이곳에서 부르는 마지막 ‘사랑 노래’가 될 것 같다. 노래에 귀를 열고, 닫았던 마음도 연다. 점점 노랫말이 콕콕 내 귀에 들어와 박힌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난……”


노래가 내 지난 1년 8개월을 가만히 추억한다.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사랑을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퇴사일기_퇴사자의 버킷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