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한때 나의 모든 것이었고 가장 큰 꿈이었다. 가장 ‘찌릿찌릿’한 꿈이기도 했다. 나는 늘 막연히 너를 꿈꿔 왔다. 사실 네가 정말로 나를 만나 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합격입니다.”
직장, 네가 나에게 했던 달콤한 그 말을 내가 어찌 잊을까. 그런데 너와 나.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우린 지금 막 헤어지려는 찰나. 그동안 네가 내게 준 안도감과 안락함, 경제적 풍요, 조금의 사회적 명예와 소속감……. 나는 너로 인해 이 세상에서 당당히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나를 설명할 때 내 이름 앞에 너를 이어 붙이면 한결 가뿐히 나를 소개할 수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 교○○○과 김○○입니다.
아직도 나는 네가 날 받아들이기로 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오죽하면 내 SNS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 메시지가 한동안 오직 너이기만 했을까.
하지만 너와 내가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사실 나는 너를 만난 덕분(?)에 멜로드라마보다도 더 진한 ‘막장 드라마’를 찍고 네게서 빠져나간다. (나중에 ‘○○의 유혹’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민소희’처럼 점이라도 다시 찍고 돌아와, 나를 닮은 내 후임으로 내가 다시 ‘너’라는 곳에 들어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래도 나는 너에게 감사한 것이 참 많았다. 네가 맺어 준 동료의 인연. 처음엔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감사했다. 네가 준비한 동료에 감사하고, 네가 주는 월급에도 감사하고, 네가 마련한 갖가지 ‘윤택한 찌꺼기’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러나 지금 나는 동료를 잃었다. 요새 나는 내 동료와 인사하는 법이 없다. 최소한의 말만 한다.
그리고 나는 너를 떠남으로써 돈을 잃는다. 어쩌면 제일 뼈아픈 부분일지 모른다. 나아가 네가 주던 ‘윤기 나는 속세’를 버린다. 싸고 맛있는 식당 밥, 연말 연초면 저절로 생기던 달력과 다이어리, 기념품으로 나오던 텀블러나 카드 지갑, 유에스비, 보조 배터리 등등. 네가 나에게 사소하게 건넸던 그 달콤함들을 버린다.
너와 나의 이번 드라마는 1년 8개월 동안 방영되었다. 이제 곧 우리의 드라마를 종영한다. 시청률은 뻔하다. 두 사람의 주인공밖에 없었으니, 누구의 흥밋거리조차도 안 되었을 테고, 그런 까닭에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준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변방의 드라마는 과연 어떤 결말이 필요할까? 주인공이 두 사람뿐인 이 드라마에서 한 사람이 기어이 떠나고 나면, 이 드라마는 자연히 끝을 향하고야 마는 걸까?
나는 종영을 앞둔 한 달 전부터 다음 드라마 예고에 돌입한다. 그 드라마는 갈등이 희소하여 좀 밋밋할 테고, 그저 먹고 자고 사는 이야기, 가령 가족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때로는 조카들의 격한 사랑을 받는 ‘가족 드라마(제목: 역시 초가삼간이라도 내 집이 최고)’가 될 것 같다. 혹은 미처 ‘퇴사 후의 삶’을 제대로 설계해 놓지 못해 이리 ‘전전’, 저리 ‘긍긍’ 하며, ‘경제적 압박 붕대’를 꽁꽁 동여매고, 다시 한번 제2의 사춘기를 누리는(?), ‘혼돈의 백수 드라마(제목: 이놈의 갈팡질팡, 또 한 번의 백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리 새 드라마를 시작하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내내 내 안에서 방영되던 ‘너(직장)’라는 드라마, 그 시청률 ‘영 퍼센트 대’의 막장 드라마는 이제 소리 소문 없이 내 세상에서 ‘페이드아웃(fade out)’이 될 것이다.
그래, 끝에 가서는 너도 나도 서로를 잊을 것이 뻔하다. 너는 나를 쉬이 잊겠지만 내가 너를 그리워할 것은 어쩌면 뻔하다. 너를 닮은 다른 ‘너’들에게 원서를 들이밀고, 자격증을 첨부하고, 너의 전화를 기다리고, 그렇게 ‘너’를 떠올리며 정장을 찾아 입고, ‘되지도 않는 사랑 고백’을 하며 ‘나는 이 회사에 적합한 인물이니, 너희가 알아봐야 한다.’고 지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나는 ‘너’를 계속 곱씹다가 결국 ‘너’를 닮은 새로운 안식처에서 너의 모습을 차츰 잊어가겠지.
직장, 너에게서 나는 참 많이 배웠다. 네게 나에게 준 것을 부인하지도 완전히 다 잊지도 않겠다. 너를 알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나였다. 너는 나에게 직장의 언어를 알려 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너를 통해 가족들에게 든든한 딸, 믿음직한 언니, 자랑스러운 이모가 되는 법을 배웠다. 너는 나의 부족한 반쪽을 충실히 채워 주었다. 그렇게 너는 점점 나의 자존감이자 자존심이 되었다.
물론 너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는 삶까지 알려 주었다. 그 탓에 나는 네 건물 구석구석에 숨어들어 참 많이도 울었다. 너는 내게 사람과 갈등하는 법과 사람을 미워하는 법까지 알려 주었다. 너는 실로 나에게 삶의 많은 것을 보여 주었다. 너 자체가 내게 자존감이자 자존심이다 보니, 네가 내 안에서 무너지기 시작하자, 나는 보기 좋게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녹다운.
그러나 나, 구차하게 매달리지는 않겠다. 너와 나, 합의하에 헤어지는 게 아마도 가장 깔끔한 뒤처리이자, 적절한 수순 같다. 너, 내 사직서 받았을 테지. 이제 서로 붙잡는 시늉 따위 하지 말고 ‘쿨하게’ 나를 보내 주길 바란다. 남은 연차에 대한 보수나 퇴직금 등은 절대 빠트리지 않길 빈다! 우리 이제, 뒷모습은 좀 계산적이어도 된다.
사실 너와 지내며 내 꿈이 더 선명해졌다. 알고 보니 너를 만나는 게 나의 꿈 자체가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너(직장)는 나의 발판이었다. 마지막 예의가 남아 있다면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제 나, 너의 머리를 밟고 오르려 한다. 너에게서 배웠던 것들을 발판 삼아 나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고자 한다. 응원까지는 필요 없다. 너는 계속 너로 살아갈 테고 나는 너를 디디고 일어서 다른 나로 살아갈 것이다.
이제 조명이 꺼진다. 네가 써 준 내 1년 8개월의 역사, 아니 내가 써 내려간 1년 8개월의 이야기가 문을 닫는다. 나, 이제 그 모든 것을 안고 떠난다. 미주알고주알 네가 담고 있는 자잘한 이야기들은 다 내가 삼킨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들만 추억하기로 한다.
여기서 헤. 어. 지. 자.
그만하면 충분하다.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너도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었다.
직장아,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