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너를 내놓았다
이사일지_1일
by
봄책장봄먼지
Oct 10. 2020
너를 내놓았다(부제: 이사일지_1일)
우리는 ㄱㅂ부동산에 '너'를 내놓았다. ‘너’는 우리의 601호. 그리고 나는 너에게 꽤 오랜 시간을 얹혀살던 어떤 사람.
코로나가 크게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 2월 중순. 우리 세 가족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그마치 나의, 그리고 우리 가족의 17년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무엇에 떠밀리듯 우리가 먹고 자고 쉬고 싸고 뒹굴었던 17년을 부동산에 내놓기로 했다. 우리의 매물, 너는…….
부동산 매물란에 '부분 올수리'라는 이름과 '남동향', 그리고 '6층'이라는 이름으로 올랐다. 너는 우리의 늦은 아침에 햇볕을 안겨 줬다. 너의 키는 6층 높이, 대략 14미터였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너의 키 덕분에 내려다보는 재미와 올려다보는 재미가 모두 있었다.
그간 너는 우리에게 꽤 완벽했다. 정문으로 가든 후문으로 가든 외출하기 편리했다. 버스도 전철도 꽤 가까웠다. (다만 한쪽이 외벽이라 겨울에는 살짝 추울 수 있는 위치였다.) 17년 전, 우리는 네가 역세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얼결에 너에게로 이사를 왔다.
막상 너를 팔려고 보니 우리는 제법 좋은 위치에 살고 있었다. 경기도지만 강남이든 서울역이든 고속터미널이든 한 번에 가는 일반 버스가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601호는 그렇게 17년이나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다.
너를 팔기로 하면서 17년 만에 처음으로 ‘천천히’ 너를 다시 생각한다.
네가 준 낮과 밤.
네가 덜어간 기억과 네가 더해 준 추억.
함께일 때도 혼자일 때도 늘 거기 그 자리에 있었던 17년간의 너.
그런 너.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어느 누군가를 만나, 늘 그랬듯, 너는 또 네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겠지?
*표지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QL-Rkbgb8HE
keyword
이사일지
이사
부동산
17
댓글
8
댓글
8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봄책장봄먼지
소속
무소속
직업
프리랜서
글자의 앞모습과 옆모습을 엿보는 취미가 있어 (1인) 출판사를 신고해 버림. 거기에 더해 청소년 소설 덕후.
팔로워
191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내가 학교 밖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
내 탓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