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지_2일
어느 누군가를 만나, 늘 그랬듯, 너는 또 네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있겠지. 어떤 못질에도 아랑곳 않고 넌 너의 온 벽을 내어 줄 테지. 온몸을 할퀴고 네 사지를 바닥까지 뜯어내도 너는 말없이 새 주인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미 지금쯤 너는 새 벽지, 새 장판으로 옷을 갈아입었으리라.
너를 부동산에 내놓고 돌아오던 날, 나는 방문을 꼭 닫고 불을 껐다. 도시의 불빛 몇 개쯤이 밤이 된 내 방을 비추고 있었다. 밤이어서인지 너를 내놓기로 해서인지 내 마음은 두서없이 내 안을 어지럽게 방망이질해 댔다. 아직 결정도 안 난 너와의 이별을 앞두고 나는 이별의 원인을 분석해대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가족은커녕 나 하나도 먹여 살리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부모에게 빌붙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나는 스물에도 서른에도 막 마흔이 되었을 때도 잊지 않고 다시금 백수가 되었다. 대책 같은 것은 세우지 않았다. 대책대로 지켜본 적도, 지켜진 적도 없었으니까.
나이가 ‘스물 몇’으로 시작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도 나는 용돈을 받아 가며 나 하고 싶은 대로 ‘임용 고사’라는 공부를 했다. 누구도 말은 안 했지만 나의 ‘임용 고사 수험생’으로서의 유효 기간은, 암묵적으로 ‘내가 붙을 때까지’였다. 나는 합격하는 그날까지 시험을 계속 보려 했다. (뚝심이었을까, 이기심이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라는 김금희 님의 소설집에 보면 꼭 나 같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시험에 붙지 못하는 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한 여자와 ‘붙지 못하는 상태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다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전자였다. 시험에 붙지 못하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복을 걷어차고 기어이 선생이 되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전공 때문에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임용 고사를 시도했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 아니었다. 이미 교생을 나갔을 때부터 내가 교사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먼저 깨달았다.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죽기’만큼 싫은 사람이었다.
진즉 깨달아 놓고도 선생이 되기 위한 담금질에 7년에 가까운 시간을 공들였다. 부모님도 동생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시험을 보는 일뿐일 거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게다가 '여자 교사'라는 안정감과 안락함이 나 스스로를 꿇어 앉혔다. 아까운 점수 차로 떨어졌을 때도, 터무니없는 점수 차로 떨어졌을 때도 나는 며칠의 ‘불합격 애도 기간’를 끝낸 후 또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나의 이십 대를 책 속에 못 박고 있을 때도, 601호, 너는 고스란히 내 옆에 있었다. 수험서들이 어지럽게 내 방을 채우는 동안에도. 그리고 내일은 늘 왔는데도 항상 내일이 오지 않을까 염려하던 나의 불안들이 내 마지막 남은 젊음마저 먹어 치우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601호 넌…….
매해 불합격을 통보받던 나의 표정을 너는 12월마다 여러 번 겪었으리라. 내가 기억 못 하는 나를, 너는 아마도 제법 오래 기억했을 것이다. 그랬던 너를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떠나기로 한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너를 갑자기 떠나려 한 것은 내 탓인 것만 같다. 20대부터 집 밖으로 떠돈 시간보다 집 안에서 너와 뒹군 시간이 참 많았다. (이 말인즉, 내가 빌빌거리던 방구석 탐험가였다는 소리겠지.)
그러니 어쩌면 모조리 내 탓이었겠지. 만일 내가 자주 백수가 아니었다면, 혹은 종착지로 알았던 마지막 직장마저 그만둬 버리는 사태로 이 상황을 이렇게 이끌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우리 계속 601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