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지 12일 차
이사일지 11일 차_너를 잊지 못하는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brunch.co.kr)
너의 소식을 멀리서 들었다_이사일지 12일 차
난데없이 너한테서 전화가 오네. 무슨 일이지?
“누구세요?”
(모르는 번호인데 받지 말자, 받자, 라는 아버지와 나의 의견 조율 중에, 그래도 혹시 급한 전화일지 모르니 ‘한번 받아 보자’는 결론을, 그 짧은 통화음 사이에 내리고서, 초록색 쪽으로 손가락을 밀며 터치해 보았더니, 갑자기 네가 나타난다.)
“저 601호인데요.”
아, 정확히는 네가 나타난 게 아니라, 너에게 이사 온 사람이 나타난다.
“601호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인데요.”
“무슨 일이세요?”
“아니, 위층에서 둥둥둥둥, 아니, 그릉그릉그릉, 반복적으로 뭔 소리가 나는데 이런 소리 안 났었어요?”
“소리요?”
우린 17년간 층간소음 문제로 민원을 받은 적도 준 적도 없다는 말과 함께, 경비실에 물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라는 권고로 전화의 막을 내렸다.
아마 이때, 이 모든 이야기를 너는 듣고 있었겠지. 위층에 올라가 봐도 사람이 없었다는 601호 새 주인의 목소리와 우리에게 문의하지 말고 경비실에 문의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601호 전 주인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우리가 아닌 그 사람들이 601호에 앉아서 층간소음을 듣고 있다니 참으로 이상하다. 들었다면 우리가 그 자리에 앉아서 들었어야 할 것 같은데 이제 그곳엔 다른 소파와 다른 티브이가, 다른 벽지가, 다른 목소리들이 너를 둘러싸고 있다.
그 뒤로 너에게서 연락이 또 왔냐고?
아니. 601호는 더 이상 우리의 전화기를 울려대지 않는다. 아마 소음 민원이 해결이 되었나 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사실 너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어야 우리는 마음이 편하다. 사돈은 멀수록 좋고 전 주인과 새 주인은 만날 일이 없으면 없을수록 깔끔하고 좋은 것이다.
뭐, 그래도 601호, 너를 통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가끔은 네가 생각난다. 생각이 나는데도 17년을 부대꼈던 너의 구조가 아주 잠깐씩 내 뇌리에서 사라진다. 점점 더 네가 지워진다. 네가 준 지우개인지 시간이 준 지우개인지 모르겠다만, 정말 601호의 ‘무소식’이 너를 내게서 쓱쓱 잘도 지우는 듯하다.
그런데 희소식(무소식)만으로 하루하루를 잘 보내던 어느 날.
이번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공식을 깨고 이번엔 이사 온 우리가, 이사 간 전 주인에게 희소식(?)을 전할 일이 생겨 버린다.
‘띵동’
“누구세요?”
사진 출처: Viscious-Speed@pixabay